의협 “코로나19 위기 틈탄 원격의료, 공공의대 날치기 용납안할 것” 경고

“코로나19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냐” 감염병 발(發) 졸속 정책 추진 작심 ‘비판’
기사입력 2020.05.2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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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준비한다는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19’ 담론을 내세워 그동안 의료계가 반대해 온 원격의료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에서 비대면 산업 육성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원격의료를 통하여 새로운 시장을 열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공공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와 같은 정부와 정치권의 졸속적인 정책 추진을 결사 반대하며, 국내에서만 1만명 이상의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전세계적인 확산이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현재진행형의 국가적 재난을 악용한 정부의 행위를 '사상초유의 보건의료위기의 정략적 악용'으로 규정하며 13만 의사의 이름으로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현재 정부가 ‘비대면 산업 육성’을 내세워 추진 중인 원격의료는 이미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의료계와의 논의 없이 일방추진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바 있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재의 더불어민주당은 원격의료는 비대면 진료로서의 그 한계가 명확하여 진료의 질을 담보할 수 없고 결과에 따른 법적 책임 소지가 불명확하다는 의료계의 반대 입장에 전적으로 힘을 보탰었다. “원격의료 등 의료영리화 정책은 추진되어서는 안되는 정책”, “5분 거리에 의사를 만날 수 있는 한국에 맞지 않는 제도”, “원격진료는 일부 재벌기업에게만 이익을 주고 국민 의료비 상승과 안전하지 못한 의료가 될 것” 등이 당시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실제 발언이다. 

2014년 당시 원격의료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2014년과 지금, 정권이 바뀐 것 이외에 원격의료의 수 많은 문제점 가운데 단 하나라도 해결되거나 바뀐 것이 무엇이 있는가.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원격의료는 ‘의료인 사이의 진료 효율화 수단’으로 한정하겠다고 공약한바 있다. 그런데 지금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그 것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정책에 ‘포스트 코로나19’라는 상표 하나를 덧붙여 국민의 이목을 속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이 있다면 정작 당사자인 의료계를 ‘패싱’하고 기재부와 산업계를 내세워 ‘산업 육성’, ‘고용 창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명부터 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대 설립 추진 역시 원격의료 만큼이나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방인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입원병상까지 민간 의사들이 참여하지 않은 곳이 없다. 거기에 민간의료기관들이 기꺼이 병상을 내놓고 환자 보호를 위한 폐쇄조치와 손실을 감내해냈다. 한편, 후방에서는 구분하기 힘든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민간 의사들이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며 비(非) 코로나19 환자들의 건강을 지켜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활약한, 그래서 ‘덕분에’ 캠페인의 주인공이 된 의료진들의 대부분은 민간의 의사였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보다 의사가 많다는, 국가가 공공의료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그래서 마치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던 수 많은 나라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맥 없이 무너졌다. 대문만 열고 나가면 즉시 원하는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고 필요하면 당일에 검사와 치료까지 한번에 받을 수 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의료접근성, 그리고 의사와 의료기관을 단일 공보험 속에 가둬놓고도 정작 알아서 생존하라는 식의 이중적이고 무책임한 무한경쟁 속에서 저마다 극대화 된 진료역량, 무엇보다도 ‘기득권’, ‘이기주의집단’이라는 비난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서도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앞으로 나서는 의사들의 우직함이 바로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하는 대한민국 의료의 강점이다. 정부가 자화자찬하는 ‘K-방역’은 이러한 민간 의료의 높은 역량이 공공성으로 발휘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우리나라 민간 의료의 놀라운 힘은 기형적이고 모순적인 대한민국 의료제도가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제2의 코로나19에 대비하는 ‘포스트 코로나19’의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바로 이러한 강점을 십분 활용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공공의대를 졸업한 인력들을 반강제로 공공병원에 근무하도록 한다고 해서 보건의료위기를 공공부문의 힘만으로 극복해내겠다는 것은 착각이며 허구적 상상에 불과하다. 공공의료가 취약한 이유는 공공의대가 없거나 공공병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문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부족, 그리고 낮은 처우로 인하여 우수한 인재들이 공공부문에 종사하기를 꺼리며 관료제 특유의 비효율성과 근시안적 계획으로 인하여 경쟁력 제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저, 공공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만이 공공의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료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 의대를 만들고 새 병원을 만들어 ‘공공’이라는 거대한 간판을 거는 것만이 공공의료라는 닫힌 사고로는 제 아무리 많은 사회적 비용을 투입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민간의 각 분야의 의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지원하는 것이야 말로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그 자체로 공익에 기여하는 성격을 가지며 그 행위가 어디에서 행해지느냐에 따라 그 공공성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염병 위기 때마다 지적되는 감염병 전문가의 부족을 살펴보라. 감염내과 전문의는 평소 타 의사들의 의뢰를 받아 환자의 감염 관련 협진을 수행하고 의료기관 감염관리를 총괄하는 고도의 의학적 자문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우리 의료제도는 이러한 기여에 대해서 지극히 인색한 보상체계를 갖고 있으므로 감염내과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과목이 되며 병원은 충분한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고 그 결과 소수가 과도한 업무부담을 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외상이나 중환자 치료, 분만, 흉부외과 분야의 의사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이유와도 같다. 이와 같은 필수의료 분야의 정상화 없이는 아무리 별도의 의대를 만든다고 해도 공공의료는 확충되지 않는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공공의대 설립이 아니라 공공성을 갖는, 생명 유지와 사회 안전에 필수적인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존중이야 말로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소속 지역에 공공의대를 유치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매 선거 때마다 지역구 선거공약으로 활용하고 있다. 원격의료와 마찬가지로 정책이 미칠 영향이나 그 실효성에 대한 고민은 미뤄둔채, 오직 경제 살리고 지역 살리겠다며 보건의료정책을 악용하는 꼴이다.

최근 줄어들었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생활 속 사회적 거리두기로의 완화를 시행하자마자 방역의 사각지대였던 클럽과 유흥가를 중심으로 감염이 재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될지도 알 수 없으며 다수의 전문가들이 ‘세컨드 웨이브’가 시작되었다며 경고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요원하며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가 정리되기 까지는 최소한 4-5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과연 정부와 정치권이 한가하게 코로나19가 마치 끝나기라도 한것처럼 ‘포스트 코로나19’를 걱정할 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보건의료’의 위기에서 배우고 내놓은 결론이 고작 ‘산업육성’과 ‘산술적인 인력증원’이라니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대한의사협회는 현재진행형의  코로나19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국민 건강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의료계의 총의를 모아 적극 대응해 나갈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2020. 5. 15.
대한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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