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예과 조우진
분명히 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을 때는 벚꽃은 저물고 봄의 기운도 사라지고 뜨거운 날씨와 함께 푸른 잎들이 가득하겠죠. 벚꽃은 학생에게 있어서 새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꽃입니다. 3월 말부터 4월 초에 개화해서 4월 중순까지 아름답게 피어있기 때문입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1학년의 경우 더욱 강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중학생이면 미숙하다고 여겨진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한 발자국 어른이 되어가는 첫발을 내디뎠다는 생각을, 고등학생이면 진로를 결정할 입시에 처음으로 들어와서 불안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대학생이면 괴로운 입시를 끝내고 행복한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를 품은 체 여느 때보다 아름답게 보인다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을 겁니다. 보통 벚꽃의 사진을 찍거나 단체사진을 찍죠. 그런데 대학생 1학년인 저는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스스로 벚꽃의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벚꽃과 제가 함께 있는 사진은 있지만 제가 찍은 벚꽃 사진은 없습니다. 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꽃말을 외우려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있습니다. 사진을 남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자격이 없기에 벚꽃의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초상권도 없는 벚꽃의 사진을 찍는 것에 누군가 자격을 요구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스스로 용납을 못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사랑할 때 누군가에게 자격을 인정받아 사랑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어떤 사람은 사랑할 자격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남을 사랑할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사진을 찍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격은 추억입니다. 아무런 추억도 없는 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옳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사진은 추억을 환기하는 매개체이라고 여깁니다. 사진을 보면서 그 당시의 일들을 떠올리면서 감정에 빠져드는 것이죠. 하지만 그냥 아름다운 벚꽃을 찍는 것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벚꽃 사진을 내려받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치 시험 때문에 정성 들여서 노트를 만들어서 열심히 공부한 뒤에 시험이 끝나고 노트를 보면 그간의 노력이 떠오르지만 오픈 북 시험에서 선생님께서 만드신 자료를 보고 시험을 치고 나서 그 자료를 보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억이 없기에 벚꽃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한 가지 의문이 있을 것입니다. 없다고요? 그럼 이 글의 두 번째 문장을 읽어주세요. 아무튼, 저는 그 많은 제가 찍지 못한 피사체 중에서 왜 하필 벚꽃을 글의 화제로 삼아서 쓰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중학생부터 지금까지 매년 보고 있음에도 찍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까지 추억이 없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번 보고 지나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매년 보고 있음에도 찍지 못합니다. 비유하자면 매년 다른 장소에서 얼굴을 아는 지인을 만나지만 좀처럼 친해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중학생 1학년일 시절을 기억해보면 처음 오는 학교에 적응하느라고 벚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요. 그리고 학교가 익숙해질 무렵 코로나 19가 세계적으로 창궐했습니다. 그래서 중학생 2학년의 시절은 벚꽃을 볼 수가 없었죠. 조금은 상황이 나아져서 3학년에는 학교에 다니는 기간이 늘어났지만 추억을 만들 시간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거의 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되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벚꽃을 보고 단체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러나 그 벚꽃을 보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진 속 상황은 알지만, 감정이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또한, 입시에 지쳐 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죠. 하지만 전부 핑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얼마든지 노력에 따라서 벚꽃 아래서 멋진 추억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지금 대학생이 되어서 상황적으로 아무런 장애물이 없음에도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추억을 만든 것에 대해서 소홀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는 많은 추억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내년의 저는 아마 이런 글을 쓰지 않겠죠. 아름다운 벚꽃 사진 한 장만이 있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