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보건소 고윤근
한약재를 다루는 손은 많지만, 그로 이야기를 짓는 사람은 드물다. 『한방울의 탐험』의 공동 저자 임오선은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의 증류소 12곳을 직접 탐방한 뒤, 바텐더로서 감초, 황기, 오미자, 홍시 같은 한약재를 칵테일의 재료로 풀어내고 있다.
같은 책의 공동 저자이자 한의사인 필자의 시선에서 가장 주목한 점은 그의 접근 방식이다. 그는 ‘약성’에 머물지 않고, 입 안에서 이해되는 감각과 기억의 질감으로 한약재를 다시 말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술이 단지 음료가 아니라, 한약재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증명한다.
『한방울의 탐험』 공동 저자 임오선 인터뷰 문답
1.
Q. 스코틀랜드 증류소 12곳을 직접 탐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증류소나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그 경험이 이후 한약재 기반 칵테일이나 아마로를 구상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비슷한 질문을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직까지 나에게 가장 인상깊은 증류소는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입니다. 싱글몰트만을 내놓는 특성상 수익구조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글렌파클라스는 비효율을 과감하게 쳐내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본 글렌파클라스는 의외로 효율적인 설비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들은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위스키만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위스키와 그렇지 않은 위스키.“
처음에는 약술을 만드는 데에 있어 동의보감이나 의방유취 등의 처방을 찾아 다듬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아무래도 약성이 조금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의사는 약이 맛없어도 처방이 잘 들으면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술은 몸에 좋아도 맛없으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술을 건강하게 마신다’는 발상 자체가 조금 엇나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이후로 과일 계열의 약재를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대중과 가까워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이해하기 쉬워야 합니다.
살아남지 못한다면 전통도 역사도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고(孤高)하기보단 남과 함께하며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2.
Q. 『한방울의 탐험』은 단순한 위스키 탐방기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시선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공동 저자로서 특히 강조하고 싶었던 관점이나,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A.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시선이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나는 그저 증류소 사이에 있는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를 했을 뿐, 주관적인 인식이나 주제를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되도록이면 증류주와 중류소의 특징적인 모습을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차라리 단순한 탐험기라고 생각해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탐험을 따라오며 느낀 여러분의 감상을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입니다.
3.
Q. 책 말미에는 한약재로 만든 아마로 실험이 소개됩니다.
이탈리아의 아마로와 비교해, 직접 만든 한약재 아마로에서 느낀 공통점이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실험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약재나 조합이 있다면 함께 소개해 주세요.
A. 약초를 이용해 사람을 치료한다는 개념은 둘 다 같았습니다. 약재와 사람은 같은 지역에서 함께 자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약을 만드는 것 또한 하나의 흐름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역에 따른 약재의 차이로 논리의 차이는 생겨나겠죠. 더 복잡한 이야기는 주제에 맞지 않는 것 같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실험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조합은 가미생맥산이었습니다. 오미자, 인삼, 맥문동을 사용하는 생맥산에 진피 등을 넣어 보다 맛있게 만든 버전입니다. 제가 시도해본 조합 중 시판되는 제품에 가장 근접한 조합이었습니다. 온전한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음료문화로 기존의 것에 대응해볼 수 있다는 것이 흥분되지 않습니까? 나는 아직도 그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서양의 아마로에 기댈 필요 없이 우리 술로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습을 잠시 맛본 것 같습니다.
4.
Q. 현재는 바텐더로도 활동하고 계시죠. 책을 쓰는 일과 술을 만드는 일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느끼시나요? 두 활동이 감각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A. 술을 만드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재료를 준비하고 구조를 짜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사랑할 요소를 넣어준다는 점도 닮아 있습니다. 다만 재료가 다를 뿐입니다.
오히려 질문을 조금 넓혀 작가와 바텐더가 유사한지를 생각한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텐딩은 예술보다 사업에 더 가까운 행위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읽지 않는 책은 그저 책장에 머무를 뿐이지만 사람들이 마시지 않는 술은 정말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가는 글만 잘 쓰면 존경받지만, 칵테일만 잘 만드는 바텐더는 그렇기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 바텐더는 고상한 직업처럼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 뒤에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5.
Q. 한약재를 다루는 일은 정밀하고 깊은 감각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바텐더로서 한약재를 활용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태도가 있다면요? 단순한 향료가 아닌 재료로 접근하는 방식이나, 한의사와의 협업 경험도 있다면 나눠 주세요.
A. 공동저자분이 한의사 면허가 있고 의견을 나누며 작업한 일은 있지만 협업이라고 부를 수준의 작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불어 현재의 제 지식과 경험으로 답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그나마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말씀드린 대로 바텐더는 예술보다 사업에 더 가까운 분야입니다. 그리고 대중이 마시지 않는 술은 그냥 사라질 뿐이죠. 따라서 바텐더가 만드는 것은 일단 사랑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계피나 건강, 쑥, 인삼 등 쓴맛/매운맛이 강한 약재들은 철저하게 향신료로 대우하되 모과, 오매, 지실, 연시 등 신맛, 단맛, 짠맛을 중심으로 재료를 구성합니다.
6.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작가이자 바텐더, 실험가로서 또 어떤 ‘탐험’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위스키, 한약재, 책 그 너머의 이야기도 기대해 봐도 좋을까요?
A. 제 궁극적인 목표는 약술로 대표되는 우리 고유의 음료문화를 발굴해 대중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먼 목표이고 앞길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당장 약성과 맛 사이의 균형조차 잡지 못하는 처지니까요.
하지만 분명 지루할 틈 없는 탐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엔 별처럼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내일은 그 중 하나와 술잔을 기울일 테니까요.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술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과 술이 만나면 이야기가 생기기 마련이죠. 그것은 문학일 수도, 의술일 수도, 혹은 사사로운 넋두리일 지도 모릅니다. 나는 오늘도 바 분에서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감각으로서의 한약재 – 삶을 닮은 이야기의 언어
『한방울의 탐험』은 단지 위스키의 여정을 담은 기록이 아니다. 이 책은 한약재가 어떻게 감각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한의학이 어떻게 더 풍요로운 감각 세계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술적 실험이다. 그의 바텐딩은 단지 향미의 탐색이 아닌, 한의사인 나에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약재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홍콩에서는 바텐더와 중의사가 함께 ‘매그놀리아 랩(Magnolia Lab)’을 창립해 감초, 구기자, 진피 등 한약재 기반 리큐르를 실험하고 있으며, ‘Hunter in the Dark’라는 홍콩 최초의 한약재 아마로도 등장했다. 이는 약재를 약효 중심에서 감각 중심으로 재구성하려는 흐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떻게 약재를 다루느냐, 그리고 그 재료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느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