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드(대신만나드립니다)
고등교육법 제11조의2(평가 등)에는, 의학ㆍ치의학ㆍ한의학 또는 간호학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인정기관의 평가ㆍ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모든 한의과대학은 교육부가 지정한 인정기관(2016. 5. 20.)인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이하 한평원)이 수행하는 평가ㆍ인증에 참여해야 하며, 한평원의 평가ㆍ인증 절차 및 결과는 법적 효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한평원의 평가ㆍ인증은 양질의 한의학인력 양성을 위한 사회적 책무성을 제고하고, 한의학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한의학 교육기관의 교육과정, 교육여건, 교육활동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여 제시하고, 이를 기초로 주기적으로 평가ㆍ인증을 시행하여 교육기관 스스로 교육 여건과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해 나가도록 유도하고 지원함을 목적으로 한다. 흔히 들어보았을 ‘KAS2022’는 바로 2022년부터 한의학교육 평가ㆍ인증에 적용될 기준을 의미한다. (Korean medicine education Accreditation Standard 2022)
필자는 예과 2학년이던 시절부터 한의대 교육과정과 관련된 여러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한의과대학 재학생들의 관심을 가진다고 느낀 이슈들 중에는 ‘통합과목’이 있다. KAS 2022에는 통합과목와 관련된 2개의 기준이 있다. 먼저 P2.6.2. 기준에서는 ‘한의과대학은 관련 학문, 학과 및 과목이 수평 통합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 A2.6.1. 기준에서는 ’한의과대학은 한의학기초, 의료인문학, 임상의학이 수직 통합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수평/수직 통합이란 어떤 의미일까?
먼저 수평 통합(horizontal integration)이란 교육과정의 특정 학년 혹은 같은 시기에 진행되는 다양한 과목 혹은 주제들 간 통합 강의를 말한다. 또,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이란 교육과정의 다른 학년 혹은 다른 시기에 진행되는 한의학기초, 의료인문학과 임상의학 과목이 통합된 과정을 의미한다. KAS2022 편람에서는 수평 통합 교육의 목적에 ‘중복된 교육내용을 정비하기 위한 교육과정의 개편’이 포함됨을 명시하고 있다.
두 가지 통합 방식 중 수평 통합의 개념은 학생들도 쉽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교육과정의 수평 통합이 KAS2022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지를 모르더라도, ‘다양한 과목이나 주제의 통합’에 해당되는 예시를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한방생리학과 생리학을 통합한다거나, 한방생리학과 경혈학에서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을 모아 경락학이라는 과목을 만드는 등의 예시가 있다. 그러나 수직 통합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는 것은 보다 어려운 일이다.
<Vertical integration in medical education: the broader perspective> 이라는 논문에서는 수직 통합을 시간의 경과에 따른 통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당 논문에서 수직 통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가 바로 H자형 의료 교육과정과 Z자형 의료 교육과정이다. 개정 전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은 학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으나, 대체로 본과 2학년 말까지 기초 과목들을 이수하고, 본과 3~4학년 시기 임상 과목들을 이수하는 구조를 따르고 있다. 기초와 임상 교육과정이 시기적으로 구분되는, H자형 구조를 취하는 것이다. 반면, 수직 통합된 교육과정은 의학 교육의 첫 시작인 year 1에서도 조기임상노출이 가능하게끔 한다. 입학 당시 교육과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초 과목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차 줄어들지만, 졸업 학년에 이르러서도 기초 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이러한 조기임상노출과 기초의학 재방문(back to basic)모델이 반영된 Z자형 교육과정은 수직 통합의 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Vertical Integration>
KAS2022에서 요구하고 있는 수평, 수직 통합 이외에도 통합 교육에 대한 다양한 모델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The integrated curriculum in medical education: AMEE Guide No. 96> 에서는 나선형 통합(Spiral integration)이 가장 이상적인(most ideal) 형태의 통합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해당 논문에서는 나선형 통합을 ‘시간과 주제 모두에 걸쳐 기초 및 임상을 모두 학습하는 교육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곧 지식, 술기, 태도의 3개 영역에 대해, 정상 조직의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비정상 조직에 대해 이해하고, 임상 실습을 거쳐 OJL(On the Job Learning)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심화 학습이 이루어지는단계를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Spiral Integration>
이러한 의학교육의 통합은 최근에 부상한 내용이 아니다. <Vertical integration in medical education: the broader perspective> 에서는 1950년대에도 미국의과대학협회 (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AAMC) 에서 학부 시기 의학교육의 목표가 다양한 기초과학에 대한 세부적, 체계적 지식을 따로따로(separately) 학습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국의 의학계에서도 통합 교육에 대한 언급은 1970년대부터 있어 왔다. 1970년 1월 8일 발행된 의협신문 제290호에서는 ‘70년대의 전망’이라는 제목 하에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 대해 논하고 있다. 특히 ‘내분비학을 독립시켜 기초, 임상의 통합 강의 실습’을 한다거나, ‘될 수 있는대로 조기부터 환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대목에서, 수직 통합의 특징인 조기임상노출과 기초, 임상의학의 통합이 언급됨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 11월 19일자 의협신문 제380호에서도 이화의대의 교육과정 개편을 다루며, ‘교육과정도 기초와 임상을 구별치 않고 혼합하여 교육’하겠다는 언급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71년 11월 11일자 의협신문 제481호에서는 서울의대의 교육과정 개편을 다루며, 서울의대가 통합강의 (Block Lecture)를 시도하고, ‘종래의 강의교육의 중복을 지양하는 새로운 교과과정을 채택‘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해당 교육과정 개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의협신문의 기사만으로 온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기사에서 언급된 키워드와, 실제 개편된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와 같은 기사들을 통해 통합 교육에 대한 논의가 과거부터 지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의계에서 통합 교육과정은 2008년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되면서 구체적인 사례가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의학계에서 1970년대부터 통합 교육과정이 점진적으로 도입되었고, 인증 기준에 통합 교육이 포함된 것은 최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의계가 KAS2022에 통합 교육과정을 포함시킨 것이 뒤늦은 조치라고 폄하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모든 교육과정 개편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갈등과 어려움을 이유로 개편 작업을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되는 법, 원만한 갈등의 조정을 통해 한의학 교육이 더욱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유니콘의 교육 브리핑
- 한의학 교육에 관심이 많은 유니콘입니다. 학생의 관점에서 한의학 교육 관련 토픽들을 정리하고, 이와 관련된 의학계, 치의학계의 과거 기사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사제공 : 대신만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