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 보건소 고윤근
향기로 짓는 한 잔
경북 경주의 황리단길 옆, 황남시장의 오래된 골목. 이곳에 ‘분(芬)’이라는 작고 향기로운 바(bar)가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200년 된 한옥의 중문이 바 카운터로 재탄생한 장면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름처럼, 이 공간엔 ‘향기’가 철학처럼 깃들어 있다. 공간의 정체성은 박대성 화백이 직접 지어준 그 이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한옥 리모델링에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황기, 당귀, 탱자, 오미자 같은 한약재들이 진, 위스키, 토닉과 만나 ‘칵테일’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쌉싸름하고 은은한, 그러나 놀라울 만큼 균형 잡힌 이 음료들은 곧 전통과 현대가 맞닿는 지점에서 태어난, 새로운 ‘향기의 언어’다.
한의사인 나에게도 이 실험은 놀라움이었다. ‘아마로(Amaro)’로 대표되는 서양의 약용주 문화와 한국의 한약재가 겹쳐지는 이 지점에서, 바 분의 운영자이신 최재광 바텐더는 단순한 콘셉트를 넘어 ‘현대적인 약주’라는 장르를 조용히 제안하고 있었다. 이번 인터뷰는, 바로 그 향기와 실험의 무대인 ‘바 분’에서 이루어졌다.
바 분의 운영자, 최재광 바텐더와의 인터뷰 문답
1. Bar 분의 탄생과 전통 : 바 이름 ‘분(芬)’은 박대성 화백께서 지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200년 된 한옥의 대문을 바 구조물로 활용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름과 공간에 담긴 의미 그리고 전통적 요소를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시작부터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저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코로나 시기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미국에서 바텐더 생활을 했습니다. 서양의 문화인 바텐딩을 미국에서 하며 동양인으로서 항상 살아남기 위해 저의 무기인 한국 동양적인 요소를 항상 칵테일이 많이 접목 시키곤 하였는데요, 경주라는 굉장히 한국적인 도시에 칵테일바를 열 때 역시도 마냥 서양에서 볼 수 있을법한 전형적인 클래식한 칵테일바 보다는, 경주 더 나아가 한국적인 요소를 칵테일에 접목시키고 싶어서 바 분이라는 한국적인 칵테일바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을 만드는 과정에서 저희 집안에 200년된 한옥의 중문을 바탑(Bar top, 바 테이블 상판)으로 이용한다던가 한옥의 목재, 문등을 인테리어에 사용해서 한국적인 느낌을 주었습니다.
2. 한약재와 칵테일 : 진(Gin)의 약용 기원에 착안해 직접 한약재 토닉을 담가 진토닉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칵테일에 한약재를 접목하게 된 계기와, 이를 통해 얻은 풍미적 매력은 무엇인가요?
칵테일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보시기에는 좀 생소해보일 수 있는 약재와 술의 만남은 사실은 크게 특이하거나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서양에서는 아마로(Amaro)라고 하는 약술 문화가 굉장히 발달해 있고 그 안에서 입맛을 돋우어주는 식전주, 소화와 숙취 해소에 좋은 식후주 문화 등이 있습니다. 이 약술들에는 당연히 약재들이 이용되고 그것을 한국에 약재인 한약으로 만들었다고 보시면 설명이 될 것 같네요.
3. ‘한방’ 스타일 칵테일의 맛과 균형 : 황기, 당귀, 탱자, 모과 등 다양한 약재를 청, 아마로(Amaro), 비터스(Bitters) 등으로 활용하신다고요. 약재 특유의 쌉싸름함과 칵테일의 단맛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시는지요?
많은 분들이 착각 하시는 것 중 하나가 ‘칵테일은 새콤달콤만 하다’라는 오해인데요, 칵테일은 음식과 같이 5가지 미각 새콤, 달콤, 매콤, 쓴맛, 감칠맛 모두를 담을 수 있는 음료입니다. 그중 단순한 한두가지만 들어있을 경우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은 밋밋한 칵테일이 나올 경우가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음식과 마찬가지로 새콤달콤하더라도 적당한 쌉쌀한 쓴맛이 칵테일에 깊이를 주고 다른 맛들의 밸런스를 잡아주며 감칠맛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왜 적당한 쓴맛이 있는 취나물 같은 나물을 좋아하나’도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4. 필자의 저서 『한 방울의 탐험』 후반부에서는 쌍화탕을 응용한 한약재 아마로 실험을 소개했는데요, Bar분에서도 직접 한약재 기반 아마로 및 청 등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전통 한약재를 리큐르로 재해석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가장 어려운 점은 사실 한국손님입니다. 저희업장은 특성상 외국인의 비율이 한국인만큼 많은 공간인데요, 아이러니 하게도 외국손님들에게는 한국의 한약재를 이용한 칵테일을 굉장히 매력있게 보는 방면, 어릴때부터 쓰고 맛이 없다는 인식이 있는 한약을 먹고 자라난 한국인들은 한약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한약재 칵테일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인식을 깨기 위해 약재가 들어가지만, 밸런스를 잘 맞추어 맛있는 감칠맛으로 그 칵테일을 손님들에게 전달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5. 현대판 ‘약주’에 대한 생각 : 한약재 칵테일이나 아마로를 만들 때, 효능도 고려하시나요? 아니면 맛과 경험 중심인가요? 바텐더 최재광님께서 생각하시는 현대적인 ‘약주’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약재의 효능에 대해서는 프로는 아니다 보니 제가 해석하고 공부한 약재의 효능들을 기본으로 한의사같은 전문가들에게 검수를 받은 후 칵테일을 판매하곤 하는데요. 그 칵테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맛의 밸런스를 잡는 것은 제가 평생 해온 일로서 감히 프로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조금 더 제 개인적인 초점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현대적인 약주란 결국은 본질은 사람들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약효로 건강하게 만드는 것도, 맛있는 술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역시나 모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6. 초심자를 위한 안내와 미래 비전 : 전통적 재료를 활용한 칵테일이 낯선 분들에게는 어떤 메뉴를 추천하시나요? ‘편하고 펀하게’ 한국적 칵테일을 풀어가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또, 앞으로 바 분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한약재 특히나 쓴맛이 어려운 분들에게는, 모과, 매실등 접근성이 쉬운 과일등의 재료로 만든 칵테일로 시작을 추천드립니다. 약재라고 꼭 쓴 것 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피, 오미자등 일상에서 디저트에도 많이 쓰이는 익숙한 재료들로 시작해보시면 좀 더 접근이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 분은 지금처럼 계속 관광객 그리고 로컬들의 사랑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장황하고 어렵게 보일까봐 걱정이 되지만 Bar(술집)의 본질은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어렵게 보지 마시고 그냥 즐거운 술집에서의 한잔을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술이 몸과 마음을 맑히는 언어가 될 수 있다면
바 분에서의 한 잔은 단지 맛있는 칵테일을 마시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한약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고, 전통을 일상 속 향기로 번역해 내는 창조적 실험이며,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현대의 약주’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한약재와 바텐더, 전통과 현대, 효능과 향기 사이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이 조화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감각과 미각, 그리고 공감의 가능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Bar 분(芬)’이 단순히 특별한 술집(bar)이 아니라, 경주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한국적인 음료 문화의 미래를 함께 짓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약재의 세계가 술의 감성과 만나는 이 접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과 더 건강한 향유의 방식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