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지원
– 『스트레스』(로버트 새폴스키)에서 배우는 현대인의 생리학
요즘 주변에서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는데 몸이 계속 불편하다”는 말을 정말 자주 듣는다. 나 역시 공부나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속이 불편해지는 경험을 한다. 예전에는 이런 증상을 막연히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로버트 새폴스키의 『스트레스』를 읽고 나서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스트레스는 단순히 정신적 부담이 아니라 몸 전체의 생리학을 흔드는 강력한 자극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 심장은 스트레스를 가장 먼저 기억한다
새폴스키는 스트레스가 오면 교감신경계가 가장 먼저 폭발적으로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혈관을 타고 퍼지면서 심박수는 올라가고 혈압은 치솟는다. 잠깐이라면 생존을 위한 보호 기전이지만, 이 반응이 반복되면 문제가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만성 스트레스가 동맥경화를 촉진한다’는 대목이었다. 혈관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다 보면 벽이 손상되고, 그 틈에 염증과 플라크가 쌓이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여성과 남성의 심장질환 양상이 다르다는 내용이다. 여성은 에스트로겐의 보호 효과 덕분에 발병 시기가 늦지만, 폐경 이후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에스트로겐 보충요법이 무조건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스트레스와 호르몬의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속이 뒤틀릴까
스트레스가 소화기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새폴스키의 설명을 빌리면 명확해진다. 일단 몸이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소화는 ‘1순위’에서 바로 밀려난다. 혈류도 근육으로 우선 보내야 하니까 위장관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에는 소화가 잘 안 되고, 쉽게 배가 더부룩해지거나 변비·설사가 반복된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 중 내가 특히 놀랐던 점은 ‘복부 지방’의 문제였다. 코르티솔이 복부 지방세포에 더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반복될수록 내장지방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몸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흔히 “스트레스 받아서 폭식했어”라고 말하는 행동도 사실은 코르티코이드 분비가 식욕을 자극하는 생리학적 반응의 결과였다.
‘ 궤양은 스트레스 탓’이라는 옛 통념은 헬리코박터균 발견 이후 바뀌었지만, 스트레스가 궤양을 악화시키는 생물학적 기전(혈류 감소, 점액 분비 저하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도 책에서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었다. 결국 스트레스가 직접 원인일 수도, 악화 요인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 성 기능은 스트레스의 직격탄을 받는다
스트레스와 성 기능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극적이다. 새폴스키는 남성과 여성 모두 스트레스가 생식축을 억제한다고 설명한다. 남성은 LHRH, LH, FSH, 테스토스테론 모두 감소하고, 여성은 배란이 지연되거나 월경 주기가 불규칙해진다.
흥미로웠던 대목은 ‘과도한 운동도 결국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생식 기능을 억제한다’는 설명이었다. 운동선수들에게 상대적으로 생식 기능 저하가 많다는 사례가 실제로 이를 뒷받침한다.
심인성 발기부전도 단순히 “마음 문제”라고만 볼 일이 아니다. 발기는 부교감신경계의 작용인데, 스트레스가 걸리면 교감신경이 우위를 점해 부교감신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즉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생식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게 설계된 셈이다. 생존이 우선이고 번식은 그 다음이라는 진화적 배경이 여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 스트레스의 종착지는 면역계
마지막으로 새폴스키는 면역계를 ‘스트레스의 최종 타격 지점’으로 표현한다. 급성 스트레스에서는 백혈구 동원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수 있지만, 만성 스트레스에서는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면역 반응이 전반적으로 억제된다.
특히 나에게 와닿았던 부분은 사회적 스트레스—고립, 낮은 사회적 지위, 관계 스트레스—가 면역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호르몬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이 생리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책에서 인용된 연구 중에는 집단 지지 치료를 받은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이 대조군보다 길었다는 사례도 소개되는데, 이는 스트레스 관리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실제 생리적 효과를 가진다는 근거로 제시된다.
■ 결론적으로, 스트레스를 없앨 수 없다면 반응을 조절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스트레스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스트레스 반응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지만, 어떤 사람은 견디고 회복하고, 어떤 사람은 몸이 먼저 무너진다.
스트레스가 심장·소화·성 기능·면역계 등 온몸을 흔드는 만큼, 감정 관리나 생활 습관, 사회적 지지 같은 ‘비의학적 요소’가 의학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아마도 새폴스키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핵심은 이것일 것이다.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트레스 반응을 조절하는 법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 배움이야말로 현대인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건강 전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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