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한의대 영감록] 묘지 위로 자라는 꽃과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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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 영감록] 묘지 위로 자라는 꽃과 나무들

기사입력 2025.08.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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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이하경

 

[한의대 영감록]은 한의대에서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의학 지식 사이로 흘러나온 영감들을 모아 펼쳐본 시리즈입니다.


터키를 여행 중입니다. 파묵칼레로 유명한 작은 도시 데니즐리에 며칠간 머무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늘 가던 빵집 뒤로 솟은 작은 언덕, 그곳이 공동묘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설레는 마음으로 그 언덕에 가 보았습니다.

 

잘 포장된 길 주위로 나무들이 반쯤 울창하게 자라 있고, 그 아래에는 비석과 묘들이 그늘과 햇볕을 고루 받으며 쉬고 있습니다. 묘는 현대식으로 널찍이 떨어져 있지 않은데, 그렇다고 우후죽순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파도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 포말을 닮아가는 해변의 조약돌들처럼 서로 조화로운 거리를 두고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리석으로 된 비석 사이의 골목을 고요 속에 거닐다 보면 마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서 그 많은 조각상 사이를 지나다니던 때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곤 합니다. 그러나 이 고요는 여음으로만 남아 흐르는 죽은 이들의 조종이 아닌, 건조한 바람에마저 나뭇잎들이 서로 부대끼고 곤충들이 오르내리며 만들어내는 공원의 숨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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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무덤을 보고 있으면 이 지구 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다 갔는지, 시간의 흐름은 얼마나 뚜렷한 것인지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기다란 칼집을 땅에 박아 끈으로 이를 두른 듯한 비석, 상단에 터번과 꽃으로 남녀를 표기해 둔 묘, 직사각형 모양의 무덤 등 다양한 양상으로 망자가 기려지고 있는 까닭은 이곳이 13세기부터 이 지역의 공동묘지로서 만들어 온 또 하나의 역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덤에 따라 D(Doğum, 출생)에는 1300년대가, Ö(Ölüm, 사망)에는 1900년대가 쓰여 있는 경우도 있어 세차게 흐르는 역사의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이는 출생할 당시에는 이슬람력을 쓰고 사망할 즈음에는 그레고리력을 썼던 터키의 개혁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시간을 몸으로써 받아들이고 내뱉는 일종의 시간 호흡이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듯한 상상이 들 정도입니다. 셀주크와 오스만,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이 지역을 오가며 바쁘게 혹은 느슨하게 삶의 즐거움을 누렸고, 그들이 때로는 헛짓거리도 하고 영웅적인 용기도 냈을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저의 차례가 주어졌다는 것, 즉 제게 삶을 누릴 시간과 기회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감사하고 짜릿하게 느껴집니다.

 

가장 인상적인 무덤의 양식은 네모난 대리석 속에 시체와 흙을 넣고 그 위로 각종 식물이 자라게 한 것이었습니다. 식물의 종류는 위로 솟아오르는 나무부터 바닥을 타고 주위로 퍼져 나가는 덩굴, 촘촘히 심어진 알로에를 닮은 풀까지 매우 다양했습니다. 특히 색색의 꽃을 심은 무덤을 보면 그 화려함에 두고두고 놀라곤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저를 사로잡은 것은, 그 풀나무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각종 관이나 나무의 성장을 위해 심어둔 지지대 같은 기구들이었습니다. 자칫 부자연스럽거나 거추장스럽게 보일 수 있는 그 기구들은, 오히려 산 사람들이 망자 주위에 싱그러움을 불어넣고자 쏟은 정성과 노력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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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무리가 무덤 위로 만드는 작은 그늘 아래로 커다란 알맹이 두 개가 움지럭댑니다. 자세히 보니 수관에서 새어 나오는 물이 촉촉하게 적신 흙에서 등딱지가 굵은 거북이 두 마리가 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적인 장면을 정오의 날카로운 햇살 아래서 목격하니, 이곳이 비록 공동묘지임에서 삶의 기운이 가득한 하나의 정원임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이곳에서 검은 것은 오로지 나무의 줄기뿐이며, 시야에 들어오는 비석과 식물들로 나머지는 온통 희고 푸르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이곳은 죽음의 흔적이 삶의 여락을 앗아가는 금극목(金剋木)의 공간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명징하게 인식하여 삶으로의 무한한 회귀를 발아하는 텃밭임을 느끼게 됩니다.

 

생세지심(生世之心)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묘지를 나가 생자들의 세계로 향하는데, 어느 무덤 위에 자리 잡아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밥그릇까지 있는 걸 보니 이곳에서 완전히 터를 잡고 사는 모양입니다. 죽은 자들의 세계 위로 산 자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지층 속에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묘지를 완전히 빠져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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