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왜 생각은 공포를 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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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생각은 공포를 이길까

기사입력 2025.08.2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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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대창면 보건지소, 한방공중보건의, 조우현

 

 

1. 사유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에는 思勝恐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직역하면 생각이 공포를 이긴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생각함으로써 공포라는 감정을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일까.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면,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할수록 공포감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엘리베이터에 갇힌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 그 상황을 생생히 떠올리라고 한다면 오히려 두려움에 떨 것이다. 思勝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나오는 답일 테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할까? 칠흑 같은 어둠, 귀신 등등. 또 누군가는 막연한 미래에 덜덜 떨기도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무서운 까닭은 그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앞에 돌부리가 있을지, 나를 노리는 무언가가 숨어있을지 모르기에 무섭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귀신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귀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며, 앞으로의 미래가 무섭다면 본인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未知만큼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있을까.

2020년 초 코로나 19 팬데믹 당시, 사람들은 너도나도 마스크를 꼈다. 정체도 모르는 이 바이러스를 우리는 너무도 두려워했다. 초유의 사태를 겪었으며, 이 바이러스의 전염력과 치사율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그때만큼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이 바이러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체를 모르는 것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미지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가 필요하다. 미지가 더는 미지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대상에 대해 사유하고 탐구하는 과정은 필수이다. 생각을 통해 미지가 더 이상 미지가 아니게 될 때 그 대상은 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을 이길 수 있다.

思勝恐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관점을 머릿속에 떠올린 후, 옛사람들은 공포가 알지 못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했다고 생각했다. 사유함으로써 미지의 영역을 점차 앎으로 바꾸자는 인문학적인 뜻도 어느 정도 내포된 구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思勝恐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2. 탐구

 

장자화는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에 나오는 思勝恐 등의 감정 제어 가설들(喜怒悲思恐五志가 오행의 상극 원리로 서로 견제한다는 가설)을 구체화하여 환자 치료에 응용하였다. 그의 저서 유문사친(儒門事親)에서는 思勝恐의 논리를 발전시켜 다음과 같이 논했다.

 

思可以治恐, 以慮彼志此之言奪之.

을 다스릴 수 있는데 이것저것 생각하게 하는 말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 갇혀 지금 벌벌 떨고 있다면 주의를 분산시켜 현상황을 잊게 만드는 전략이 떠오른다. 유문사친에 따르면 란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자극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장자화의 관점은 꽤 설득력이 있다. 폭은 어깨 너비만 하고 길이는 열 발자국 정도 되는 굵은 선이 땅 위에 그어져 있다고 하자. 그 선 위에서 열 발자국 걷는 행위는 아무런 두려움도 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선 바깥 양옆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라면 어떨까. 똑같은 폭, 똑같은 열 발자국이기 때문에 아무런 공포도 못 느낄까? 편도체를 다쳐 공포를 못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 발자국 내딛는 것도 고역일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양옆이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장자화의 관점은 처음 언급했던 思勝恐의 관점과는 달라 보인다. 하지만 유문사친에 수록된 그의 임상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환자 중에 작은 소리에도 두려움에 떨었던 부인이 있었다. 강도가 들었던 트라우마로 생긴 병이었는데, 많은 의사의 약 처방에도 낫지를 않았다. 이때 장자화가 치료하였던 방법이 경자평지(驚者平之) 요법이었다. 놀란 사람은 안정시키라는 뜻의 치료법인데, 이는 오늘날의 체계적 탈감작 요법과 흡사하다. 이 치료법은 특정한 자극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게끔 도와주는 요법으로, 감당 가능한 것부터 차츰 공포가 일지 않도록 한 후 점차 자극을 높여 마침내는 그 대상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게끔 한다. 자극에 익숙해지게 하여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장자화는 이 방법으로 부인을 치료하였다. 부인의 눈앞에서 물건을 두드려 큰 소리를 낸 후 그 소리가 그녀를 해치지 못함을 인지시킨 것이 첫 단추였다. 큰 소리는 그녀를 해치지 못하므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 핵심이다. 부인은 그전에는 이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부인은 알지 못함에서 앎으로 나아갔다. 이는 처음 언급했던 思勝恐의 관점과 닮았다.

한편, 유문사친에 소개된 이 치험례는 오늘날의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와도 연관된다. CBT는 오늘날 널리 이용되는 심리치료 기법 중 하나다. CBT에서는 사람들의 느낌이나 감정은 상황 그 자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각 개인의 인지나 생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간주한다. 만일 한 개인이 특정 자극에 대한 공포가 크다면 그 자극을 없애려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극을 바라보는 왜곡된 사고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치료를 시도한다는 뜻이다. 작은 소리도 본인을 해칠 수 있다는 부인의 그릇된 믿음을 바로잡는 것은 인지행동치료의 관점과 맞닿아있다. 인지행동치료의 관점 또한 思勝恐과 연결지을 수 있다.

 

3. 통합

 

思勝恐은 우선 사유함으로써 미지를 밝혀내 공포를 지워낸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관점은 미지로 해석해서 나온 것이다. 또 하나는 무서운 대상 외의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의를 흩뜨려 공포를 극복한다는 시각이다. 이 관점은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 외의 생각으로 해석해서 나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지행동치료의 관점으로 본 공포를 유발하는 특정 자극에 대한 왜곡된 사고를 바로잡는 행위이다. 사고를 변화시켜 자극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공포의 대상이 더는 두렵지 않게 되니 이 또한 을 이기는 것이다.

첫 번째 관점과 마지막 관점은 서로 비슷하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그 자극을 유발한 대상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극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두 번째 관점과 대비된다. 공포를 이기는 방법이 하나는 그 대상을 분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대상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는 것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세 가지 해석 모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 번째 관점은 미지가 공포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 관점은 공포란 때로 그 자극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으로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지막 세 번째 관점은 공포란 자극을 인지하는 방식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관점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이 모두 생각이 공포를 이긴다는 것을 납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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