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의대학교 한의학과 이나영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광복절이다. 특히 올해는 1945년 8월 15일 이후로 80년이 지난 광복 80주년으로 의미가 있는 해이다. 우리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주권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신 독립운동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달의 칼럼을 통해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주신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무장 투쟁을 했던 강우규 의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강우규 의사는 1855년 7월 14일 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의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강우규 의사의 손녀의 기록에 따르면 주변의 인정을 받는 뛰어난 의술을 바탕으로 강우규 의사의 의료업은 상당히 번창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의학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독립운동을 결심하며 망명을 하였고, 1915년 요하현에 정착한 강우규 의사는 의술을 행함과 동시에 한인마을에 학교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민족 계몽 운동을 이어나갔다. 1919년에 일어난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요하현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독립운동을 하고자 결심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여 대한국민 노인동맹단에 가입하게 된다. 3.1 운동 이후 문화통치로 식민지 정책을 바꾼 일제의 속내를 알아낸 강우규 의사는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처단하고자 했다.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맞이한 거사 당일, 남대문역에 도착한 사이토 총독을 폭탄으로 제거하고자 하였으나 폭탄이 목표 지점과 다른 곳에 떨어지며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의거였다. 3.1운동 이후 의열투쟁의 효시였으며 이는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의거 당시 65세로 당시로는 고령에 속하는 노인이 폭탄 투척 의거를 거행했다는 점은 이후 청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음으로 독립군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한 신홍균 선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음력) 1881년 8월 20일 생으로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의 신홍균 선생은 한의학을 가업으로 이어온 집안의 영향을 받아 한의사가 되었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이주하였다. 1916년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김중건 선생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아 김중건 선생과 함께 독립군 ‘대진단’을 창설하였다. 신홍균 선생은 독립군에서 한의학으로 병사를 치료하는 군의관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1933년 한국독립군에 합류하여 대전자령 전투를 포함한 다양한 전투에서 군의관으로 활약하여 승리에 이바지했다. 특히 대전자령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전자령 전투 당시 일본군의 철수 소식을 듣고 매복 작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폭우로 인해 일본군의 철수 지연되었다. 이에 따라 식량이 점차 떨어지며 병사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때 신홍균 선생이 한의학 지식을 활용하여 약재 및 식재료로 사용되는 검은 버섯을 병사들에게 보급하였다. 이는 식량 문제에 도움이 되었고. 독립군이 끝까지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분이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주시기 위해 노력하셨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만 하며, 특히 이번 칼럼 작성을 통해 지금까지 잘 몰랐던 한의사 독립운동가분들을 알 수 있게 되어 한의학도로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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