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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오면

기사입력 2025.09.2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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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한의원 원장 강솔

 

날이 그렇게 덥더니 어제부터는 춥다. 9월이 그런 때다. 바뀌는 순간, 습하고 더운 날씨에서 청량하고 건조한 공기로 바뀌는 때, 햇살이 따가우면서도 바람은 시원한 때. 8월에서 9월로 변하는 순간도, 9월에서 10월로 바뀌는 순간도 좋다. 좋아하는 계절이어서인지 9월은 늘 빨리 도망가는 느낌이었다. 요즘 한의원에서 일과가 끝나면 B어르신이 오늘도 안 오셨네라는 생각이 든다. 9월이면 꼭 오셨는데. 그래서인지 올해 9월은 유독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B어르신은 한의원에 자주 오는 분이 아니셨다. 그 분의 부인 A님이 자주 오셨다. 이 곳에서 한의원을 한지 이십년이 넘었는데 몇 년 전에 같은 동네에서 다른 건물로 옮겼다. 예전 한의원에서 왕뜸을 했었다. A님을 처음 뵌 것도 왕뜸때문이었다. 그 분은 하얗고 깨끗한 인상으로 서울에서 이사를 오셨다. 오래전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한의원에서 왕뜸을 뜨고 좋아지셨다고. 남편이 은퇴를 하시고 이곳으로 이사오셨는데 왕뜸을 뜨고 싶어 처음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시간이 흐르며 남편이 가구공장을 하셔서 한때는 매일 10여명의 직원들을 세끼 밥을 해 준 일, 딸이 셋이 있는데 지금 가까이 사는 딸은 막내라는 것등을 알게 되었다. 얼추 10년동안 꾸준히 오셨다. 연세가 꽤 있으신데도 늘 뜸 뜨는 동안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말씀도 조곤 조곤 잘 하셨던 분이었다

 

한의원을 새 건물로 이전한다고 할 때 본인 일처럼 기뻐하셨다. ‘내가 길가에서 전단지라도 뿌려주고 싶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이전하면서 큰 화분들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이거 여기서 키우기 어려우면 내가 좀 가져다 키워줄까?’라고 하시는 얘기도 하셨다. 그런 얘기를 하실 때 아니 왜 남의 일에 그러시지? 하는 마음보다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느끼시는구나 싶어서 고마웠다. 잘 키울테니 자기 죽으면 다시 가져가라고 하시고,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같이 웃었다. 한의원을 옮기면서 왕뜸을 없애려다가 2개를 옮겨 왔다. 부모님과 이 분이 왕뜸을 하고 싶어 하셨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 분에게 대장암이 재발했다. 20년을 잘 살아왔는데 재발했다며 많이 낙담하셨다. 용기를 내서 병원에 다니고 약을 바꾸면서 치료를 계속하셨다. 약을 바꿔도 듣지 않을 때, 신약 임상 실험에 지원해서 좀 좋아졌나 싶었는데 다시 복수가 찼을 때, 전신에 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때, 너무 배가 아플 때, 갑자기 안면마비가 왔을 때, 아무것도 못 먹을 때.,,마다 한의원에 오셨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무력감이 들곤 했다. 한번은 병원에 입원하셨다 퇴원했다고 한의원에 오셔서 화분을 다시 갖다 줘야하는데.. 라고 하셨는데 할 말이 없었다. 그 분도 나도 왜 화분을 가져다 주시려는지 알 수 있었기에. 그리고 또 입원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느날 실장님이 원장님 A씨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고 보호자분이 전화오셨어요라고 했다. 보호자께 한번 전화드려볼까 하다가 말았다. 전화 해서 무어라고 한다는 말인가. 치료자로써 할 말이 있는가?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얼마 뒤 한창 바쁜 중에 실장님이 치료실로 오더니 원장님 전화 좀 받아보세요 지금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A씨였다. 임종하실 것 같다고 보호자가 그러셨어요. 라고 직원이 나에게 속삭였다. ‘원장님 고마웠어. 병원 온다고 말도 못하고 왔네. 고마웠어. 원장님한테 꼭 전화를 하고 싶었어. 고마웠어요. 잘 지내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안녕히 계시라고도 잘 가시라고도 말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고맙다는 말 밖에. 며칠이 지나 A님 딸과 남편분이 한의원에 오셨다. 원장실에 들어오시더니 꺼이 꺼이 엉엉 소리를 내서 우셨다. 옆에서 따님이 원장님 죄송하다고. 어머니 돌아가셔서 수목장으로 모시고 오는 길인데 아버님이 꼭 원장님한테 들렸다가고 싶다고 하셨다고, 어머니 잘 돌봐드려서 넘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편분이 마치 아이처럼 꺼이 꺼이 우셨다. 나도 눈물이 났다. 그때가 9월이었다.

 

다음 해 9월에도, 그 다음해 9월에도 B님은 한의원에 찾아오셨다. 혼자 계셔서 따님댁으로 가셨는데 종종 허리 아프다시면서 한의원에 오시기도 했다. A님이 살아 계실 때 그렇게 한의원에 오시라고 해도 침이 무섭다며 약 한 두번 지은 게 전부였는데. A님이 돌아가신 다음엔 지하철을 갈아타며 한의원에 오셨다. 첫해엔 눈가가 짓무르게 우셨고 체중이 많이 빠지셨다. A님 얘기를 하고 싶어서 오시는 것 같았다. 이번 9월엔 아직 B어르신이 오시지 않았다. 침 맞으러도 몇 달 동안 오지 않으셨다. 이제 애도의 기간이 지나신걸까. 그럼 다행이다. 그런데 혹시? 혹시 아버님께서 못 오실만한 상황인가. 벌써 80대 중반이 넘어가는 연세이시다.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요즘 매일 일과가 끝나면 B님이 떠오르는 이유다.

 

A님이 돌아가신 9월 이후, 해마다 9월이 되면 호스피스 병동에서 받았던 전화가 떠오른다. 내가 특별히 뭔가를 해드리지 못한 분이었다. 암에 대해서 좀더 찾아보려는 노력도 충분하지 않았다. 좋은 치료자가 되고 싶었고 본질에 충실한 사람으로 살자고 결심했지만 늘 해야 하는 일에 쫓겼고 실력이 뛰어난 한의사가 되지도 못했다. 평범한 동네 한의사일뿐이다. 그 분이 대장암이 재발해서 전체로 퍼져가는 과정에서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그런데 무엇이 A님이 임종 직전에 한의원으로 전화를 하고 싶게 만들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나는 과연 내 책무를 다 했는가? 유족이 찾아 오셔서 감사 인사를 할만한 일을 내가 했던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덕분에 9월이 되면 계절과 바람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한의사로써는 마치 새해를 맞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새해가 되면 올해는 나이 한 살 더 먹었으니 잘 살아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새 계획과 새 결심을 세우듯이 요즘 9월이 나에겐 한의사로써는 새해 같은 기분이다. 자 올해도 열심히 진료하자. 환자분한테 지나고 나서 그때 이렇게 좀 할 걸 그런 생각하지 말자. A님에게서 받은 과분한 신뢰를 기억하자. 마음만 있을 뿐 실제가 부족한 임상을 하지 말자. 무기력함을 덜 느끼도록 실제로 임상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더위에 늘어져 있다가 9월이 되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내 마음 속 한의사라는 화분도 A님이 잘 자라도록 키워주시는 것같다.

 

9월이 가기 전에, B님이 한의원에 한번 오셨으면 좋겠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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