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지원
표준이란 무엇일까. 표준은 특정한 기준값을 의미하며, 표준화란 대상을 그 기준에 맞추는 과정을 뜻한다. 현대 의학은 대부분 표준화되어 있다. 예컨대 혈압은 120/80, 혈당은 식전 일정 수치가 표준값으로 설정된다. 이렇게 표준화를 통해 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기준의 의료를 제공하는 것, 이것이 현대 의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여러 진료를 참관하며 느낀 점은, 한의학은 어딘가 획일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진료지침과 교육 체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한의학은 본질적으로 획일화보다는 다양성에 더 가까운 의학이다. 여러 개원가를 방문하며 만난 원장님들 또한 저마다 추구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한의학의 진입장벽이자 동시에 가장 큰 강점이다.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한 만큼 치료법 역시 다채롭고, 이는 곧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환자들에게 더 넓은 치료의 선택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한의사로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확실한 ‘정답’이 주어지지 않으니 길은 많고, 그 길을 모두 익히는 일은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외부 의료계의 시각에서 보면, 다양성은 과학의 이름으로 배제되기 쉽다. 그들의 세계에서 과학이란 곧 표준화, 획일화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획일화가 곧 과학화일까? 한의학의 수많은 가지를 잘라내고 하나의 줄기만 남겨 정형화하는 것이 과연 21세기 한의학이 생존할 유일한 길일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한 인터뷰에서 ‘클래식의 대중화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뜻은 클래식이 대중과 멀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대중화에는 두 갈래가 있다. 내가 대중의 입맛에 맞게 변하거나 혹은 대중이 나를 원하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가 우려한 것은 첫 번째 길, 즉 원작의 의미를 잘라내고 단순화해버리는 대중화였다. 클래식 한 곡은 수십 분에 걸쳐 각 악장이 서사를 이어가며, 전체를 통해서야 비로소 작곡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표면만 건드리는 단순화는 결국 진짜 의미를 지워버린다.
한의학의 길도 이와 같다. 예를 들어 사암침, 체질의학 등은 표준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들이야말로 한의학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음양오행 같은 전통적 개념도 단순히 시대착오적이라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이 여전히 환자의 증상을 분류하고 설명하는 유용한 틀로 기능하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동시에 초음파나 레이저 같은 현대 기술을 접목한 치료도 배척할 이유는 없다. 이는 한의학이 시대에 맞춰 진화하며 다양성을 확장해가는 과정일 뿐이다. 과거의 한의학이 기술에 발전에 따라 더 정교하고 안전한 침을 사용해왔듯이, 21세기의 한의학은 정교한 진단 기기를 활용해 더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의학이 필요로 하는 것은 대중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억지스러운 대중화가 아니다. 오히려 한의학이 지닌 고유한 쓸모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대중이 스스로 한의학을 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길일 것이다.
* 메디콤 뉴스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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