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누구나 믿고 싶은 것이 있다-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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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믿고 싶은 것이 있다-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

기사입력 2025.10.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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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한의대 한의예과 문경록

 

 이야기는 조선 시대에 실존했다고 알려진 예언집의 일종인 <정감록>으로부터 시작된다. ‘흰돌머리 마을이라는 시골 마을 출신인 정 처사라는 인물은 우연히 정감록의 내용을 접하고, 정감록에서 말하는 새로운 황제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여(혹은 그렇게 믿게 하려고) 어린 시절부터 그의 아들인 황제에게 온갖 경전을 읽히고 제왕학을 가르친다. 황제는 장차 성장하여 여러 사람을 자신의 슬하로 들여 남조선국이라는 국가를 건국(이라고 해 봤자 흰돌머리 마을과 그 주변 땅에 불과하다)하지만, 그 뒤로는 일본군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참패하거나, 하는 일마다 실패하며 서서히 몰락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황제는 경전에서 읽은 가르침을 실천하려 시도하고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지만, 해방 후에는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해 겨우 몸을 붙일 땅마저 잃어버리고 허울뿐인 동네 늙은이가 되고 만다.

 

 우리는 이 황제라는 인물을 단순한 우화의 주인공이나 미치광이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 민족의 삶을 대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군을 단순 왜구 취급하며 낮추어 보다가 참패한 황제의 모습은 그저 오랑캐로만 여겼던 중국과 일본애게 국토가 유린당하고, 심지어 일본에게는 국권마저 빼앗긴 당시 조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경전 속의 추상적인 가르침에만 집착하고, 기껏 바깥세상에 발을 들여도 온갖 사기꾼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도 후기 조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처럼 황제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은유이자, 동시에 조선에 대한 풍자로 똘똘 뭉친 인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만주에서는 마적들의 위협에 노출되고, 해방 후에는 이념 갈등으로 인해 측근 인물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거나 자신의 혈육이 실종되기도 한다. 6.25 전쟁 시기에는 북한군과 남한군이 번갈아 들어오면서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렇듯 이 작품은 황제라는 인물을 통해 각종 이념들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얼룩지고 훼손된 황제의 말기를 통해 대한민국에 큰 상처를 남긴, 무의미한 이념 다툼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 작품에서 황제라는 것은 그저 허울뿐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겨 있는 의미도 과연 허울일까? 황제는 끝까지 자신을 황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비록 그것이 청년기에는 과대망상에 의한 것, 노년기에는 자신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에 대한 회한에 의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황제가 끝까지 자신을 황제라고 믿고 싶어했듯이, <정감록>에 따라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고 싶어했듯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갔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조선인들도 믿고 싶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고통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백마 탄 초인이 황야를 가로질러 나타나 살기 좋은 시대를 열어 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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