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김미주
요즘 하루라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고 사는 날이 있을까?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알림 소리에 반응하고, 식사 중에도 스크롤을 내리며, 잠들기 전까지도 빛나는 화면 속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매일같이 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살지만, 동시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로감과 불안, 그리고 공허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외로운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SNS 속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일은 쉽지만, 정작 내 생각을 꺼내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의문을 품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안데르스 한센의 ‘인스타 브레인’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집어 들었다.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 왜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고, 휴대전화의 알림에 반응하고, 행복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본능적인 존재인지, 그리고 그 본능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우리를 끌고 다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어질 글에서는 책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몇몇 구절을 중심으로, ‘디지털 사회 속 진화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주제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눠보려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쩌면 기술 진화의 ‘부적응자’일 수 있다는 의문점을 함께 풀어보자.
1) 우리는 오늘날 세계에 맞게 진화하지 못했다
“2000~3000년 만에, 혹은 200~300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 동안 인간은 주변 환경을 괄목할 정도로 바꾸었다. 인간 관점에서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지지만 진화의 측면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 오랜 세월 우리는 주변 환경에 맞춰 진화해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맞지 않게 되었다.”
살면서 스스로를 원시 인류가 진화한 개체로 본 적이 있나? 아마 자기 자신을 그렇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경험은 없을 것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삶에서 주변 환경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이지만 인류의 역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날은 나의 신체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 인류 역사상 가장 불일치하는 시점일 것이다. 단 한 번도 그런 관점에서의 나를 바라보지 못했던 나에게 진화론적 관점에서 접근한 이 책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과거에 편지지를 사서 손으로 편지를 쓰던 내가 더 이상 손 편지를 쓰지 않고 타자를 쳐서 마음을 전하는 오늘날의 모습은 진화적 차원에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현대인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는 ‘진화적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있는가?
2) 발언공포증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는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했을 것이기 때문에 무리에서 평가받고 굴욕당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뇌의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작동되어 심장이 빨리 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주변 평가에 본능적으로 민감한 것은 아직 현대 사회에 인간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 한 번의 발표 실수로 직장을 잘릴 정도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생존 문제와 연결지어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의 나는 어른이 된 지금보다 훨씬 더 부끄러움이 많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나고 어쩔 줄 모를 만큼 심장이 뛰는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왜 이럴까?하는 물음에 ‘숫기가 없어서’, ‘자신감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를 넘겨짚고 성격 탓을 하며 고쳐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이 또한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무리 생활이 생존에 가장 중요했던 만큼 배제되지 않기 위해 무리에서의 평가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이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으니 현대 사회의 인간도 이러한 특질을 이어받아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게 되는 것이다. 자기 PR의 방식이 더욱 다양해진 오늘날의 세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직업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자아 형성과 인간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과도한 연결로 인해, 나를 평가할 수 있다는 사람이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SNS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은 큰 용기가 요구되는 일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는 타인의 평가에 대해 내재된 두려움이 있음을 인지하고 타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소망이 생겼다.
3) 범람하는 프리롤 광고
“뇌가 휴대전화의 알림에 반응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페이스북을 훑다가 강도 사건의 기사를 읽고, 스니커즈 세일 광고를 보고, 절친의 인스타그램 새 피드 게시 알림이 뜨는 과정을 겪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한참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메커니즘은 모두 뇌의 생존 전략이었고, 여전히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뇌는 우리의 일이 방해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서류 작성 같은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생존을 돕기 위해 진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에 대해 집중력을 잃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책에서도 나왔듯이 소름돋을 정도로 정교하다. 아마 SNS를 사용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다. 어떤 목적으로 SNS에 들어갔더라도 금세 그것을 까먹을 정도로 매혹적으로 시간을 빼앗는다. 해야 할 일을 잊게 하는 알고리즘의 파도는 원시적인 우리의 뇌가 저항할 수 없게 하는데, 나 또한 이에 대해서 매번 경각심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할 일을 잊어버리고 몇십분이 훌쩍 지나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원시시대의 선조들은 온 세계가 위협의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고, 따라서 주변 환경을 더 많이 알아야만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의 후손들은 그 생존 욕구를 이어받아 지식에 목말라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 헤매는데, 이 본능에는 도파민이 작용한다. 새로운 것에만 반응하는 지식에 대한 도파민은 스크롤만 내리면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알고리즘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며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원시 시대의 뇌와 별반 차이 없는 뇌로 살아가는 우리는 아무리 우리의 뇌가 몸 속에 있다고 해도 절대 나의 편이 아님을 잘 알아야 한다. 무의식의 뇌를 믿지 않아야 한다. 의식적으로 뇌를 사용하고, 온전히 나의 목적을 위한 뇌의 알고리즘이 사용되도록 주의해야 하는 것이 현대인이 가져야 할 경각심이다.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알면서도 빠지는 중독의 상태에 있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경각심은 무의식이 작동하는 순간을 인식하는 힘을 기는 것을 의미한다.
4) 뇌는 지름길을 사랑한다
“뇌는 신체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기관으로, 가능한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기억을 저장할 때에 지름길을 선택하게 된다.”
“즉, 뇌가 기억을 저장하는 임무를 컴퓨터에 위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정보 자체보다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 파일 장소를 기억하는 게 당연히 쉬워진다.”
요즘 나를 비롯한 많은 대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노트가 아닌 패드와 노트북에 필기를 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의 시험기간 공부시간이나 학습량이 큰 차이가 없음에도 대학 입학 후에 학습 능력이 많이 저하된 것 같다고 느껴왔었는데, 이 파트를 읽으면서 수업을 듣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 원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내용을 예전에 비해 더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기분탓으로 치부될 일이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서 머리 쓰는 일만 해도 쉽게 배고픔을 느끼게 될 정도로 뇌는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관이다. 그만큼 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즉, 뇌는 어떤 방식으로든 본인의 일을 위임할 수 있다면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전화번호를 외우지도 않고 강의 시간에 노트와 펜을 쓰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휴대전화와 태블릿,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다. 이런 방식으로 디지털 기기에게 위임하여 세상의 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을 갖고 있는 것이 나의 지적 재산이 되고 똑똑하게 삶을 사는 중이라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과도기를 겪은 세대인 내가, 2025년에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는 이렇게 변화한 삶의 방식이 전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지식 수준을 높이는 것까지의 역치를 넘어선 후로 오히려 기술에 의탁하여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기술이 우리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하도록, 우리가 기술을 체득하고 내면화하여 활용해야 한다. 이미 너무나도 발달된 오늘날에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노트와 펜을 대체하기 위해 단순히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사고를 도와주는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그러니 아직은 미숙한 우리의 도구 사용법을 더 정교하고 이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5) SNS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SNS를 오래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기분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 친구가 많은 사람은 사회적 지지와 행복감이 향상되는 경험을 하며 자신감도 높아진다고 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약 70건의 개별 연구 결과를 취합해보니, SNS가 우리 기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그 여파가 크지 않았고 개인의 기질적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또한 SNS 사용을 수동적으로 하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보다 의기소침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즉, SNS를 사교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거나 개인 브랜드를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그러한 수동적 사용법을 취하는 사람이 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SNS가 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인만큼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데에 큰 일조를 했음은 분명하다. 집에 있어도 친구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고, 해외에 있는 지인의 일상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며 관심과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은 당연히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SNS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의 일상과 얘기도 표현해야 한다. SNS를 단지 타인의 삶은 관찰하고 정보를 얻는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남들과 비교하게 되고, 자신의 삶이 초라해보이며 위축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책의 다른 파트에서 나온 내용으로 인간이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도파민이 분출된다고 하였는데, 이런 관점에서도 SNS에 본인에 대한 얘기, 일상적인 생활을 공유하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된다. 물론 주변의 시선과 평가가 두려운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공개하는 범위만 조정한다면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정도의 용기는 도전해볼만 할 것이다. 특히 요즘 숏폼 형식의 영상들이 유행하면서 짧게 짧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넘기면서 정작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일상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는 소홀해지는 것 같다. 스쳐지나가는 영상들을 보는 용도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디지털 일기장으로 SNS를 활용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나를 표현할 것인가, 나를 잃어버릴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우리의 선택이 보다 더 현명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6) 내가 휴대전화를 쓰는가, 휴대전화가 나를 쓰는가
“나중에 휴대전화와 SNS가 우리의 관심을 지금보다 더 잘 끌 수 있을까? 우리가 원한다면 인간의 뇌와 더 조화를 이루는 휴대전화와 SNS를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발상이다.”
“기술이 어떻게 설계되었느냐를 신경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인간에게 맞춰야 하는 것이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거물들은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해 회한을 토로했다. 특히 SNS 관계자들 중에서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앞서 #뇌는 지름길을 사랑한다에 대한 결론으로 나는 인간이 변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는 나와 반대의 생각을 가졌는데, 그의 의견도 일부 동의한다. 기술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사용하는 것도 인간이라면 그저 인간의 삶이 더 건강하기 위해 기술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실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이미 거대 자본들은 인간의 가장 취약한 점을 활용해서 휴대전화와 아이패드, SNS를 개발해왔다.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어왔고, 앞으로는 이보다 더한 AI가 개발될 것이 전망되는 시점에서 오로지 인간이 디지털 시대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 또한 이것이 순진한 발상이라고 언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개개인의 노력이 절실해졌고, 디지털 기술과 SNS를 소비하는 우리의 태도가 바뀌어야 할 때이다. 무비판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SNS의 정보들을 자체적으로 걸러서 수용해야 한다. 진화론적 관점에 따라 예측해 보건대, 이러한 의식적인 사용자만이 생존하고, 기술에 매몰되고 아무 생각 없이 SNS에 빠져사는 사람들은 도태되는 진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적절히 새로 발전한 기술의 사용법을 배우고 활용할 수는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에게 질질 끌려가는 형세가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휴대전화를 쓰는 시대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절실하게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깨어나야 한다.
7) 행복은 당연한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환경에 적합한 특질을 발달시키며, 이를 도태 압력(evolutionary pressure)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행복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기까지는, 도태 압력은 거의 작용하지 않았다. 이는 행복이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은 인간에게 지속적인 행복감을 심어 주는 것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행복감은 일시적이게 느끼도록 만들어졌고, 이러한 긍정적 감정들은 더 많은, 더 좋은 것을 원하는 감정으로 빠르게 대체되어 계속 행동하도록 만든다.”
“불안과 우울은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며, 과거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이로 인해 생기는 고통까지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불안하거나 우울한 사람들의 기분을 전환하고 지원할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SNS를 사용하면서 왜 나는 남들만큼 행복하지 않을까?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진 적이 있다. 남들은 매일이 행복해보이는데, 나만 혼자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시초부터 행복이 주어진 게 아니었다. 불안, 우울, 두려움, 걱정이 기본값이었고, 종종 이것에서 해방되어 행복함을 느끼는 일이 있었을 뿐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니 일상이 더할 나위 없이 편해졌다. 부정적인 감정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찰나의 행복이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외치며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행복을 위한 도태 압력이 작용하도록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인간은 여전히 그것을 추구할까? 아마도 인간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삶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마이너스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서로를 돕고, 스스로를 가꾸며 반짝 빛나는 순간들에 의미를 남기며 살아가야 한다.
머리말 中 ‘수많은 심리학자가 똑같이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바로 “디지털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는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이 질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 또한 꾸준히 던져왔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스마트폰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초,중,고등학교부터 현재까지의 인간 관계를 SNS로 발전시켜온 나와 친구들은 어떤 유대를 쌓아 왔을까? 이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려울 정도로 기술에 잠식당한 우리들의 생활에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인간의 생활 양식이 신체의 진화 속도에 맞지 않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였다. 심지어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거치며,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의 여파로 인포데믹스(Infodemics, 정보 전염병)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온라인상 연결은 엄청나게 강력해졌고, 그만큼 우리는 잘못된 정보에 취약해졌다. ‘똑똑한 기업가들이 이미 인간 뇌 해킹에 성공했다.’는 섬뜩한 사실로부터 더욱 끔찍해진 세상의 변화가 이제 서서히 사람들에게도 인지되는 중인 것 같다.
인류의 출현 이래로 이토록 기술이 발전해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편리한 삶을 살게 된 것이 아주 찰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진화의 속도는 이를 미처 따라가지 못했음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는 못했다. 어쩌면 거대한 연결 속에서 신속함을 미덕으로 살아가며 모든 것이 쏟아지는 우리 세상에 짓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지내는 날이 많았던 것은 당연하다. 내 몸은 정보화시대에 맞게 아직 진화하지 못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디지털 사회와 우리 뇌의 속도를 비교한 것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때도 없이 휴대전화를 붙잡고 생활하는 나를 보면서도 ‘그래도 나 정도면 중독은 아니지.’라고 애써 모른척 매일 수많은 시간을 할 일을 잊은 채 보내왔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하루 3시간 휴대전화를 한다지만,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을 보면 기본 5~6시간 정도는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톡, 틱톡 여러 플랫폼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휴대전화는 우리에게 도파민을 주는 존재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가 나오고, 여러 알림이 울리면 중요한 내용이 있나?하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도파민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선택하도록 만드는 뇌의 물질이다. 즉 만족감을 주는 보상 물질이 아니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니, 휴대전화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휴대전화를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100%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답은 책에서도,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도 ‘아니다’로 나온다. 단지 그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을 잃게 된다. 웃기고도 슬픈 얘기지만 친구들과 만나면 소위 ‘핸드폰 타임’을 가지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 오랜만에 만나서도 각자 휴대폰을 쥐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안타깝고 씁쓸하지만 참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도파민의 원리를 알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 휴대폰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여전히 휴대폰이 주는 도파민에 반응하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사실이다.
이런 휴대폰 중독에 벗어나고자 SNS를 잠시 지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는 휴대폰을 보는 시간을 줄어들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기분도 훨씬 나아지게 만들었다. 평소 나의 SNS 사용 패턴을 생각해보면 나의 얘기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고, 보통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숏츠를 주로 보면서 일명 ‘인플루언서’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면서 정보를 얻고,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올라오는 스토리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자기 전에 SNS를 보면서 1시간, 2시간을 보낼 때마다 점점 더 우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일 별 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는 내가 누군가의 일상에 자랑할 만한 순간들만 모은 것을 내내 보다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플루언서들은 그걸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좋아보이는 물건들도 많이 살 것이고, 멋있어 보이는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뒷면에 있는 실제의 일상은 알 수가 없다. 남들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면서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하게 지낸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꽤나 오래 걸렸다. SNS를 지운 후로 대면적인 인간관계에 좀 더 집중하다보니 결국 사람 사는 것이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며 우울감이 점차 사라졌다. 다들 학교 생활을 하며 매일 쳇바퀴같은 일상을 보내고, 과제, 시험에 치여 스트레스도 받으면서, 가끔은 인간 관계에서 힘든 점도 있고, 특히 나처럼 SNS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든 경험도 비슷하게 겪고 있었다. 모두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제 SNS와 관련된 정신적 문제들이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얘기다. 우리의 불안이 상품이 된 사회에서 나의 우울은 산업의 산물이 되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결국 SNS의 순기능을 잘 활용하며 현대의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가짐을 잘 가다듬고 더 현명하게 기술을 활용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역시 우리가 진화하고 있으나, 그 속도가 더뎌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도 역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도태될 텐데, 우리의 기술이 이러한 진화의 과정을 방해하고 있는 꼴이다. 현재는 인류 진화 역사에서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대격변의 시기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없었던 스마트폰이 전 세계 누구나에게 보급된 것에 더해서 AI라는 인공지능이 태어났으니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인류의 진화가 이뤄질지, 어떤 특질을 가진 자가 도태될지 언급한 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주체적인 사용자’로서의 인간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을 만드는 자, 사용하는 자 모두 인간이어야 하고, 따라서 우리는 기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여러 번 고민하고 생각해서 선택하고 사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 주체성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을 읽은 나 또한 단번에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모두가 이 책을 읽고 일말의 경각심을 가지고 아주 작은 변화의 불씨라도 지펴보는 노력을 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위로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