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비약물 통증치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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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물 통증치료의 시대

기사입력 2025.12.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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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박민지

 

고령자 만성 요통, 침 치료는 지속 가능한 치료 전략이 될 수 있을까

고령화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 마주하는 환자의 다수는 65세 이상 고령자이며, 이들이 가장 흔히 호소하는 증상 중 하나가 바로 만성 요통이다. 고령자의 요통은 단순히 허리 통증이라는 국소 증상에 그치지 않는다. 보행 속도를 늦추고, 외출 빈도를 줄이며, 결국 사회적 관계와 일상 활동 전반을 위축시킨다. 통증은 신체 기능의 문제를 넘어, 삶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고령 환자들은 허리가 아프다기보다는 이제는 오래 서 있기가 힘들다”, “조금만 걸어도 쉬어야 한다”, “밖에 나가는 게 겁난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통증 자체보다 통증으로 인해 발생한 기능 저하와 활동 회피가 문제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요통은 신체의 특정 부위가 아니라, 고령자의 일상과 자율성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통증 치료의 핵심 화두는 얼마나 빨리 통증을 없앨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하게, 얼마나 오래 관리할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고령자에서는 약물의 진통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큰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통증을 차단하는 치료보다 관리하는 치료가 요구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비약물 통증치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고령자 만성 요통, 왜 치료가 어려운가

고령자 요통이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이 아니다. 노화에 따라 근육량과 근력이 감소하고, 관절과 추간판은 퇴행성 변화를 겪는다. 여기에 골다공증, 당뇨병, 심혈관 질환, 신장 질환 등 다양한 기저질환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치료 선택지는 더욱 제한된다. 한 가지 치료가 다른 질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항상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고령자의 경우 통증을 회피하기 위해 움직임을 줄이게 되고, 이는 다시 근력 저하와 관절 경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허리 통증은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통증으로 성격이 바뀐다. 통증 그 자체보다, 통증으로 인한 활동 감소가 문제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또한, 고령자 요통은 명확한 단일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상 검사에서는 척추관 협착, 추간판 퇴행, 골극 형성 등이 흔히 관찰되지만, 이러한 소견이 반드시 통증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임상에서는 영상 소견과 통증의 정도, 기능 제한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이처럼 고령자 요통은 구조적 문제, 신경계 민감화, 근육 기능 저하, 심리·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만성화된다. 이 때문에 단일 병변을 제거하거나 통증 신호만을 차단하는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기능 저하의 악순환을 어디에서 끊을 것인가가 치료 전략의 핵심이 된다.

 

약물 중심 통증치료의 구조적 한계

현실적으로 고령자 만성 요통 치료에서 약물은 가장 먼저 선택되는 수단이다. 접근이 쉽고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물 치료는 고령자에게 여러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는 비교적 안전한 약물로 인식되지만, 고령자에서는 위장관 출혈, 신기능 저하, 심혈관계 부작용 위험이 뚜렷하게 증가한다. 특히 고혈압, 당뇨, 신장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환자에서는 장기 복용이 사실상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근이완제나 진정 작용을 가진 약물은 통증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졸림과 어지럼증, 인지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이는 곧 낙상 위험 증가로 이어지며, 고령자에게 낙상은 요통 자체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요통 치료 중 발생한 낙상으로 인해 고관절 골절이나 장기 입원이 필요한 사례도 적지 않다.

마약성 진통제는 통증 조절 효과에도 불구하고 의존성, 변비, 인지 기능 저하 문제로 인해 장기 치료에는 사실상 적합하지 않다. 결국 약물은 통증을 일시적으로 낮출 수는 있어도, 기능 회복과 장기 관리라는 목표에는 구조적인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이유로 고령자 요통 치료에서는 비약물적 접근이 치료 전략의 중심으로 재배치되고 있다.

 

비약물 통증치료가 주목받는 이유

비약물 통증치료의 핵심은 단순히 약을 쓰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다. 비약물 치료는 통증을 억제하는 대신, 신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생리적 조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통증을 으로 보지 않고, 신체 상태 변화의 결과로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레이저 치료는 미세 순환을 촉진하고 조직 대사를 활성화해 회복 환경을 개선하며, 고주파와 초음파 치료는 깊은 조직에 열과 기계적 자극을 전달해 근육과 결합조직의 긴장을 완화한다. 이러한 치료들은 통증 신호 자체를 직접 차단하기보다는, 통증을 만들어내는 조직 환경과 신경 반응을 조절하는 데 초점을 둔다.

침 치료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침은 말초 신경 자극을 통해 중추 신경계의 통증 처리 과정을 변화시키고, 근육 긴장 완화와 국소 혈류 개선을 동시에 유도한다. 특히 고령자에게 침 치료는 반복 적용이 가능하고, 약물 부작용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 중요한 장점을 가진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침 치료는 경험적 치료를 넘어, 현대 비약물 통증치료 스펙트럼 안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Back in Action’ 연구: 침 치료를 현실에서 검증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받는 연구가 바로 미국 국립보완통합보건센터(NCCIH)의 지원으로 진행된 Back in Action 연구다. 이 연구는 65세 이상 만성 요통 환자 789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다기관 무작위대조시험으로, 침 치료가 실제 진료 환경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 연구의 가장 큰 특징은 pragmatic 연구 설계다. 이는 치료 효과를 이상적인 실험 조건이 아니라, 현실적인 진료 환경 속에서 평가하는 방식이다. 연구에는 다양한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자들이 포함되었고, 실제 의료체계(Kaiser Permanente, FQHC )에서 이루어지는 진료 패턴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연구는 세 개의 군으로 구성되었다. 첫째는 3개월 동안 최대 15회의 표준 침 치료군, 둘째는 표준 치료 후 추가로 3개월간 최대 6회의 유지 치료를 받는 강화 침 치료군, 셋째는 침 치료 없이 기존 의료체계 내에서 통상적인 치료를 받는 일반 진료군이다. 이는 임상 현장에서 흔히 제기되는 침 치료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유지 치료는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연구 설계 안으로 끌어들인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증 점수가 아닌 기능 회복을 평가하다

Back in Action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평가지표의 선택이다. 이 연구의 1차 평가지표는 통증 점수가 아니라, RolandMorris Disability Questionnaire(RMDQ) 점수 변화였다. 이는 허리 통증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기능 중심 지표다.

고령자에게 통증은 반드시 완전히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있다. 통증이 일부 남아 있더라도 스스로 걷고, 앉고, 외출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진다. 반대로 통증 점수가 낮아져도 기능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치료의 의미는 제한적이다. 침 치료는 통증 감소를 통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치료이며, 이러한 목표는 비약물 통증치료 전반의 방향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유지 침 치료, 경험을 근거로 바꾸다

임상 현장에서는 침 치료 후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일정 간격으로 유지 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만성 요통이 재발과 악화를 반복하는 질환이라는 경험적 판단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지 치료는 그동안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Back in Action 연구는 유지 침 치료를 독립적인 중재로 설정함으로써,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는 침 치료를 일회성 시술이 아닌, 만성 질환 관리 전략의 일부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고령자 요통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완치보다는 관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안전성과 비용: 고령자 치료에서의 현실적 가치

고령자 치료에서 안전성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 조건이다. 침 치료는 기존 연구들에서 중대한 이상반응 발생률이 매우 낮은 치료로 보고되어 왔다. 대부분의 이상반응은 경미한 통증이나 멍에 그치며, 이는 반복 치료가 필요한 고령자 만성 요통 관리에서 큰 장점이다.

또한 이 연구는 비용-효과성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고령자 요통은 병원 방문, 영상 검사, 약물 처방이 반복되며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침 치료가 기능 회복을 통해 의료 이용을 줄일 수 있다면, 이는 개인의 삶의 질뿐 아니라 의료 시스템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될 수 있다.

 

한의학과 현대 비약물 치료의 접점

한의학에서는 고령자 요통을 단순한 국소 통증이 아니라, 노쇠로 인한 회복력 저하, 기혈 순환의 둔화, 전신 기능 저하와 연관된 문제로 본다. 침 치료는 통증 부위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전신 조절을 통해 회복 환경을 개선하는 치료다.

이는 현대 비약물 치료가 추구하는 생리적 조절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침 치료는 가장 오래된 비약물 치료이지만, 동시에 현대 의학적 언어로 재해석될 수 있는 치료다.

 

비약물 통증치료는 대체가 아니라 조합이다

고령자 만성 요통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단일 치료법의 우월성이 아니다. 침 치료, 레이저, 고주파, 운동 치료는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조합과 단계의 문제. 환자의 상태와 회복 단계에 따라 이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치료의 성패를 좌우한다.

Back in Action 연구는 침 치료가 이 조합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약물 중심 통증치료의 한계를 넘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통증 관리 전략을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이 연구의 의미는 크다.

비약물 통증치료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조합해 가장 잘 활용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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