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불안은 하나의 얼굴만을 갖지 않는다 - 한의학의 ‘경계, 정충’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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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하나의 얼굴만을 갖지 않는다 - 한의학의 ‘경계, 정충’ 개념

기사입력 2026.01.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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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진다연

 

불안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지만, 그 강도와 지속성, 그리고 삶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장애의 수준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불안장애는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양상과 경과를 보이는 여러 질환들의 집합체다.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모두 불안을 핵심 증상으로 하지만, 그 표현 방식과 임상적 특징은 뚜렷이 구분된다.

공황장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특징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숨이 막히거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이대로 죽을 것 같다는 강렬한 공포가 수분 내 최고조에 이르는 공황발작이 반복된다. 발작 자체는 대개 10~20분 정도 지속되다가 소실되지만, 이후 또 발작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예기불안이 일상을 지배하게 된다. 많은 환자에서 광장공포증이 동반되어, 도움 없이 빠져나오기 어려운 장소나 상황을 회피하게 된다.

범불안장애는 공황장애와 달리 특정 발작보다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불안이 중심이 된다. 적어도 6개월 이상,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과도한 걱정과 긴장이 이어지며, 명확한 대상 없이 떠다니는 부유불안이 특징적이다. 여기에 근육 긴장, 쉽게 피로해짐, 자율신경계 항진 증상이 동반되며, 평생에 걸쳐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일부 환자에서는 시간이 지나 공황장애나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강박장애는 불안을 줄이기 위한 생각행동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는 질환이다. 환자는 스스로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사고와 이를 중화하기 위한 강박행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감염에 대한 공포, 건강염려, 대칭에 대한 집착 등이 흔한 강박사고이며, 반복적인 손 씻기, 확인 행동, 계산, 고백 등이 대표적인 강박행동이다. 행동을 반복한 후에야 잠시 안심이 되지만, 그 전에 멈추려 하면 극심한 불안이 발생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전쟁, 폭행, 성폭력, 재난과 같이 통상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협적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한다. 사건의 재경험, 악몽, 사건을 연상시키는 상황에 대한 회피, 현실에 대한 무감각, 과도한 경계심과 자율신경계 과민 증상이 핵심이다. 대개 사건 후 6개월 이내 회복되지만,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면 일상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불안장애는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불안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고, 신체 증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만성화될수록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의학의 불안 개념인 경계(驚悸)’정충(怔忡)’은 현대의 불안장애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틀을 제공한다.

한의학에서 경계와 정충은 모두 가슴이 두근거리고, 잘 놀라며, 마음이 긴장되고 불안한 상태를 자각하는 증후를 의미한다. 두 개념의 공통점은 불안을 느끼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차이는 발생 양상에 있다. 경계는 정신적, 외부적 자극에 의해 유발되며 증상이 간헐적이고 비교적 짧게 지속되는 반면, 정충은 특별한 유발 인자 없이 발생하고 지속 시간이 길며 단속성이 없다. 이는 공황발작과 예기불안, 만성 불안 상태를 각각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한의학적 치료는 이러한 불안 상태를 단순히 마음의 문제로 보지 않고, 심신의 균형이 무너진 결과로 해석한다. 두근거림, 쉽게 놀람,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꿈이 많은 상태, 소화 불량, 식욕 저하 등은 불안과 함께 흔히 동반되는 증상이다. 이러한 경우 온담탕, 원지환과 같은 처방이 활용될 수 있다. 이는 담()과 심신의 불안을 조절하여, 긴장된 마음과 신체 증상을 함께 완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반면 두근거림과 함께 기운이 없고, 쉽게 피로하며, 식사량이 적고 안색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귀비탕, 양심탕과 같은 처방이 고려된다. 이는 기혈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나타나는 불안과 심계 증상을 보강하는 접근으로, 만성적인 불안과 무기력이 동반된 환자에게 적합하다.

 

불안장애는 단일한 치료로 해결되기 어렵다. 약물치료와 정신치료가 중요한 역할을 하듯, 한의학적 접근 역시 신체 증상과 정서 상태를 함께 조절하는 하나의 치료 축이 될 수 있다. 불안의 형태와 경과는 다양하지만, 그 본질은 편안하지 못한 마음과 몸에 있다. 불안장애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 이러한 통합적 시각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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