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이하경
2021년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문을 연 세계문학 서점인 ‘서점극장 라블레’는 2026년 4월을 끝으로 서점 운영을 마치기로 했다고 한다.
서울시에서 문학을 쏘아오던 한 대의 등명기가 소등을 앞둔 모습을 보니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 속 인물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나뉘고 흩뿌려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시간상 이어져야 할 1부와 3부 사이에 의도적으로 미래의 이야기인 2부를 끼워 넣었고,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르투로 벨라노와 울리세스 리마의 행적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그 주변 인물들의 입과 몸을 통해 묘사하는 다성적 방식을 택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문학을 하고자 했던 내장 사실주의 그룹도 이전의 수많은 분파들과 마찬가지로 쇠락과 해체의 길을 걷게 된다. 벨라노와 리마가 멕시코시티를 떠나 세계를 소요하자 내장 사실주의자들 간의 교류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하신토 레케나는 1976년 11월 기록에서 말한다. “울리세스와 벨라노가 소노라로 떠났을 때, 나는 그룹이 소멸 중임을 직감했다. 장난이 다 끝났다는 듯이.”
서점극장 라블레는 세계문학을 엄숙하고 난해한 대상이 아닌 친밀하고 즐거운 일종의 대화임을 전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매주 목요낭독회를 진행하여 작품을 새롭게 감각하고자 했고, 사튀로스 문학 수다의 밤을 통해 신간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가장 독특한 점은 체호프의 「검은 수사」, 고골의 「외투」 같은 단편을 각색하여 서점에서 연극을 진행하는 문화였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웃음은 그렇게 다시 이 세상으로 새어 나왔다.
불은 명확하지만 주변부로 갈수록 아리송하다. 캠프파이어의 재가 어딘가로 날아가 숨어버리듯,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웃음소리도 그렇게 살랑살랑 날아가 녹아버리는 것일까? 즐거움을 기점으로 삼아 시작된 일은, 사건은, 시대는 어디에 닿아 끝날까?
23장은 1994년 7월 마드리드 도서전의 작가들이 저마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하며 끝을 맺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냐키 에차바르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비극으로 끝난다.” 아우렐리오 바카,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비극으로 끝난다.” 페레 오르도녜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희극으로 끝난다.” 훌리오 마르티네스 모랄레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암호작업으로 끝난다.” 파블로 델 바예,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공포 영화처럼 끝난다.” 마르코 안토니오 팔라시오스, “희극으로 시작된 것은 개선행진처럼 끝난다. 그렇지 않은가?” 에르난도 가르시아 레온,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어김없이 미스터리로 끝난다.” 펠라요 바렌도아인,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허공에 대고 하는 위령 기도로 끝난다.” 23장의 끝은 내장 사실주의자였던 펠리페 뮐러가 벨라노를 떠나보내며 떠올린 것들이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희극적인 독백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웃지 않는다.”
이렇게 통일성 있는 23장을 보면 미술관에서 출구로 가는 길에 있는, 빈 종이에 저마다 소감을 적어 벽에 붙이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일랜드 문학 박물관(MoLI)의 제임스 조이스 전시 끝에도 그런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독특한 푸른 빛의 『율리시스』 초판본을 보고 들어가면 나오는, 조이스의 『율리시스』 창작 노트 맞은편이었다. 그곳에 이르며 관람한 조이스의 작품들 사이에서 무언가 선뜻 적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장 사실주의자들은 옥타비오 파스와 파블로 네루다라는 양대 산맥 사이에서 개골창이 되어 흐르는 대신 차라리 소노라의 사막으로 가 증발하고자 했던 이들이다.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끝에서 “창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묻는 마데로의 시는 그림을 활용한다는 면에서 세사레아 티나헤로의 유일한 시와 필연적으로 연관성을 갖게 된다. 마데로는 세사레아 티나헤로의 시를 본 적이 없지만, 평소에도 그런 수수께끼를 즐겼던 시인이다. 그의 1월 9일 일기가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행을 즐겁게 하려고 나는 오래전 학창 시절에 배운 수수께끼를 그렸다.” 그 수수께끼는 차에 있던 루페, 벨라노, 리마에게 낸 것이었다. 후에 벨라노와 리마는 세사레아 티나헤로의 시를 보며 그 순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수수께끼 같은 날, 정말 있었는지 의심되는 날도 있다. 내가 서점극장 라블레에 간 것은 단 하루뿐이었다. 다른 많은 곳이 그러하듯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작 가 본 적은 없는 곳이었다. 구경을 마칠 즈음 나는 언어유희에 관한 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고, 주인은 나보코프의 몇몇 작품을 추천하다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권해 주었다. 그렇게 수수께끼가 가득 담긴 그 책을 들고나왔다. 그게 전부였다. 희극으로 시작된 모든 것은 기억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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