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학생의 시선에서 의료인류학을 보다 1] "고치는 의술"을 넘어 "가꾸는 돌봄"으로: 한의대생이 마주한 의료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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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시선에서 의료인류학을 보다 1] "고치는 의술"을 넘어 "가꾸는 돌봄"으로: 한의대생이 마주한 의료인류학

기사입력 2026.04.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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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김인우

 

한의과대학의 예과와 본과 과정은 방대한 양의 경전과 임상 지식을 습득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아직 환자의 맥을 짚어보거나 현장을 발로 뛰어본 적 없는 예비 의료인에게 '돌봄'이라는 단어는 때로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구호처럼 다가오곤 한다. 의료인류학은 바로 이 지점, 기술로서의 의학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자리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의료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현대 의료의 가장 큰 위기를 '질병(Disease)'이라는 생물학적 이상 상태에만 집착한 나머지, 환자가 삶의 맥락 속에서 경험하는 '질환(Illness)'의 서사를 놓치는 데서 찾는다. 그에게 돌봄이란 단순히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는 노동이 아니다. 돌봄은 "우리의 세계(, 자아, 환경)를 유지하고, 지속하며, 개선하는 모든 활동"이며, 그 핵심은 환자가 자신의 고통에 부여하는 의미인 '질환 서사'에 온전히 응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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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치매와 같은 만성 퇴행성 질환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치료'의 과정을 따르지 않는다. 끝없는 쇠락과 정체기가 반복되는 이 비논리적인 고통의 시간을 "지워버려야 할 얼룩"으로 치부하지 않고,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정리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돌봄의 본질이다.

 

한의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을 신체와 정신, 환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소우주로 파악해 왔다. 이러한 전인적 접근은 의료인류학이 추구하는 돌봄의 가치와 본질적인 궤를 같이한다.

 

한의학의 핵심 개념인 양생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자연치유력을 강화하는 활동이다. 이는 돌봄을 단순히 결핍을 메우는 행위가 아니라, 생명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적극적인 '가꿈'의 과정으로 정의하는 의료인류학적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서양의학이 해부학적 몸에 집중할 때, 한의학은 기()의 순환과 장부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아시아적 몸'을 이야기한다. 이는 인간을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보는 '관계적 존재론'을 임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효율성과 표준화만을 추구하는 현대 의료 시스템에서 환자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한의학적 진료는 침 치료와 같은 밀착형 행위를 통해 환자와 깊은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데 강점이 있으며, 이는 환자의 호소에 그대로 응답하는 '반응성'을 실천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현장을 뛰어본 적 없는 학생일지라도, 의료인류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는 이미 돌봄의 주체가 될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봄은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앞에 겸허히 머물며 그 삶의 무게를 함께 견디겠다는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배우는 시간에도 이 태도를 새기며 나아가는 것이 한의계,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길일 것이라 믿는다. 한의학의 지혜를 의료인류학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장차 우리가 만날 환자들에게 단순한 처방전 이상의 '삶을 지탱하는 힘'을 제공하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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