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김미주
의료봉사는 보통 현장에서의 진료 장면으로 기억되곤 한다. 낯선 지역에서 만난 환자들의 미소,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진료, 그리고 진료 후에 오가는 감사의 인사들. 그러나 의료봉사는 이렇게 아름답고 빛나는 장면의 현장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치열한 준비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필자가 속한 의료봉사 동아리는 여름과 겨울, 매 방학마다 의료낙후지역을 찾아 봉사를 떠난다. 겉으로는 며칠간의 진료 일정이 봉사의 전부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훨씬 더 긴 준비의 시간이 존재한다. 진료를 담당하는 학년은 방학 중에도 수차례 모여 임상 스터디를 진행하고, 봉사 직전에는 다함께 며칠 일찍 모여 합숙하며 최종 준비 과정을 거친다. 약품과 각종 장비를 꼼꼼히 점검하고, 분담한 역할을 완벽히 숙지하며, 마지막으로 진료를 시뮬레이션하는 단계로 마무리한다. 봉사지에 도착해서도 환자분들이 편하게 진료받으실 수 있도록 시설물을 설치하고 깔끔한 환경을 준비한다.
현장에서도 긴장은 늦춰지지 않는다. 환자분들이 오실 때마다 밝게 인사드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봉사지에 오신 순간부터 나가시는 마지막까지 ‘여기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한 마음들을 보여드린다. 또한 매일 저녁, 모두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모여 그날의 진료를 복기한다. 각자의 역할에서 어떤 처치가 미흡했는지, 환자에게 보인 자신의 태도와 언행이 적절했는지 솔직하게 소감을 나누고, 다음 날의 더 나은 봉사를 위해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봉사가 끝난 후에도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는 사후 스터디가 이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봉사가 매듭지어진다.
처음 봉사를 시작했던 저학년 시절, 이 모든 과정이 때때로 버겁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봉사에서 얻는 보람과 환자분들과 함께 느낀 진심 어린 감사와 행복이 있었지만, 짧은 봉사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봉사단을 이끄는 최고 학년이 된 지금, 비로소 그 지난한 과정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 시간들은 단순히 봉사를 위한 과정이 아니라, 한의사가 되기 전에 그 마음속 밑바닥부터 쌓아야 하는 의료인으로서의 마인드와 태도를 기르는 과정이었다.
의료봉사는 단순히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 무료 진료를 제공하는 시혜적인 행위가 아니다. 예비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위하는 마음, 그리고 환자를 기꺼이 받들어 모시는 태도가 술기와 이론과 함께 최선, 최고의 상태로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봉사의 참된 의미가 완성된다. 처방과 진료, 의료 장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환자를 대하는 자세와 책임감이다. 봉사를 위한 준비 과정이 길고,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기술을 연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의료인으로서의 태도를 훈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밤늦도록 이어지는 피드백은 내일 만날 환자에게 더 나은 최선을 드리겠다는 다짐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료봉사는 ‘즉흥적인 선의’가 아니라, 하나의 철저한 시스템이다. 개인의 착한 마음만으로는 환자의 건강을 책임질 수 없다. 여러 사람이 함께 역할을 분담하고, 진료 프로토콜, 기록과 동의 절차, 사후 피드백까지 철저히 준비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점검하고, 일정한 기준과 책임 속에서 움직일 때 봉사는 지속 가능해지며 비로소 ‘의료’라는 이름을 달 자격을 얻는다. 이 시스템 안에서 우리의 봉사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의료의 본질과 무게를 배우는 장이 된다.
우리는 흔히 봉사를 ‘하러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 모두가 함께 모여 애써서 준비하는 그 시간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필자에게는 이번 겨울과 다음 여름, 두 차례의 봉사가 남아 있다. 이제는 그 봉사들이 단순히 ‘잘 해내야 할 과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의료인이 되길 원하고, 그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남은 두 번의 봉사 동안, 후회 없는 경험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만날 환자분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이미 시작된 봉사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값진 준비의 시간, 땀 흘리는 현장에서의 순간에 성실히 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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