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불행한 냉소주의자들을 위한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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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냉소주의자들을 위한 처방전

기사입력 2026.01.31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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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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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회의론자, 자밀 자키 저, 정지호 역, 심심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을 지목하겠는가? 누군가는 AI 기술의 지나치게 빠른 발전을, 누군가는 급증하는 금융 사기와 탈세를, 누군가는 줄어들 기미가 없는 핵무기 증가 추세를 가리킬 것이다. 또 적잖은 이들은 그렇게 답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어찌할 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다시 침울해질지도 모른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자밀 자키는 그의 저서 희망찬 회의론자에서 새롭게 퍼져가는 사회적 전염병인 냉소주의의 위험성을 설명함과 동시에, 냉소주의에서 회의주의로 나아갈 방안을 제시한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둘은 다르다. 저자는 그 차이를 냉소주의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결핍인 반면 회의주의는 추정에 대한 신뢰의 결핍이라고 정의한다. 냉소주의자는 인류가 이기적이며 탐욕스럽다는 전제에 사로잡혀 세상을 한계 짓지만, 회의주의자는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 혹은 타인의 사고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저자는 사람에 대한 불신을 토대로 한 냉소주의에서 벗어나야 함을 주장하며,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불신의 대가와 신뢰의 가치를 대조해 보여준다. 예컨대 1999<보스턴 글로브>에서 소방국의 과다 지출 및 부패를 지적하는 기사를 보도한 후 신임 소방국장은 경영 컨설턴트를 고용했다. 그 컨설턴트는 소방관들이 가짜 부상을 주장하며 근무 시간을 이탈하는 것을 고치겠다며 엄격한 병가 정책을 시행했고, 고된 노동을 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던 소방관들은 배신당한 느낌을 받았다. 새 병가 정책은 결국 소방관들이 무더기로 병가를 사용하며 맞대응하는 결과를 낼 뿐이었다. 이는 다른 사람이 실제보다 더 악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부정성 편향이 낳은 결과이다.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라고 가정하는 것은 냉철하고 현명해 보이지만, 불신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신뢰가 가진 힘을 활용하지 못한다. 일례로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 CEO 자리에 오른 스티브 밸머는 직원들을 이기적인 족속으로 여기며 감시와 꾸짖음으로 일관했다. 6개월마다 직원의 운명이 결정되는 환경에서는, 아무리 능력 있는 직원이더라도 생존을 위해 다른 직원을 짓밟고 올라가야만 했다. 회사는 서로를 의심하는 분위기로 가득 찼고, 직원들은 단기 성과를 높이는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후 차기 CEO가 된 사티아 나델라는 직원들이 가진 창의성과 협동력에 주목했고, 그들이 호모 콜라보라투스일 것이라고 믿어주었다.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직원 간 협력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장려하는 해커톤을 꾸준히 열었다. 직원들은 경영진이 베푼 신뢰에 적극적으로 보답했다. 참신한 아이디어들은 미래 기술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고, 회사는 오픈AI에 적극 투자했다.

 

1970,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교수 조지 거브너는 대중 매체의 폭력 콘텐츠에 노출된 이들이 세상을 실제보다 더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것을 관찰하며, 이를 비열한 세계 증후군(Mean World Syndrome)’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현상은 결코 감소하지 않은 듯 보이는데,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 대중 매체의 특성인 까닭이다. 부정적인 언급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조회수도 늘기에, 언론 역시 냉소주의의 매개로서 작동해 온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라는 주장이 담긴 책 팩트풀니스의 출간 당시의 파장이 그리 컸던 것이리라.

 

희망은 낙관적인 기대가 아니라 실용적인 대응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처럼, 이 책은 냉소주의자를 회의주의자, 그것도 희망찬 회의주의자로 바꾸는 데 초점을 둔 실용서로서도 기능한다. 그 목표는 책의 구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1냉소주의를 버리는 열쇠에서는 냉소주의가 우리 삶에 가져오는 대가와 그 위험성을 설명하고, 2냉소주의 속에 있는 회의주의 깨우기에서는 냉소주의가 우리 삶에 얼마나 접근해 있으며 회의주의가 이를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3희망찬 회의론자의 길에서는 회의주의자들이 세상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최근의 사례들을 통해 제시한다.

 

한편으로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친구이자 신경과학자였던 에밀 브루노에게 바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에밀은 인간의 밝은 면에 집중하며 주변 사람들을 신뢰했고, 젊은 나이에 뇌종양을 진단받은 뒤로는 과학이 평화에 기여하여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시도했다. 럭비팀 코치로 일할 때는 선수들을 엄격하게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의 가능성을 신뢰하며 각자의 강점을 찾도록 도왔다. 또 분쟁 지역과 가까운 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평화 협정에 찬성하지만 분쟁 지역과 멀리 떨어진 곳의 주민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현상을 보자,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을 직접 인터뷰하고 영상을 배포하며 사람들이 가진 양극화의 오류를 줄임으로써 평화 교섭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했다. 이렇듯 책 곳곳에 담긴 에밀의 사례는 저자의 주장을 더 흥미롭고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준다.

 

책의 흥미로운 구성 중 하나는 두 번째 부록으로 실린, 증거 평가장이다. 저자는 책의 각 장에 담긴 핵심 주장들에 대해 증거 수준을 1에서 5점으로 나누어 점수를 매겼다. 저자가 직접 평가했다는 점에서 한계는 있을 테지만, 몇몇 주장에 대해서는 제한된 증거에 해당하는 2점을 거리낌 없이 주었기에 저자의 노력과 애정이 전해진다.

 

루쉰은 소설집 납함의 머리말 자서에서 무력감에 빠진 그에게 글을 쓰도록 설득한 친구와의 대화를 소개한 바 있다. 답답함과 적막함에 젖어 있던 루쉰이 말한다. “가령 말일세, 쇠로 된 방인데 창문도 전혀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것이라 하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오래지 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죽어 가므로 결코 죽음의 비애 같은 걸 느끼지 못할 걸세. 지금 자네가 크게 소리를 지른다면 비교적 정신이 돌아온 몇 사람은 놀라서 깨어날 걸세. 자네는 이 불행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구제될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여기지 않나?” 하지만 친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나 몇 사람이 깨어 일어난다면, 이 쇠로 된 방을 부술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걸세.” 친구의 이 말은 루쉰이 광인일기를 쓰도록 이끌었다.

 

소설집 납함에 수록된 또 다른 소설, 고향은 이렇게 끝난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 루쉰 소설 전집, 루쉰 저, 김시준 역,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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