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서점가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한층 깊이 있게 다룬 새로운 지침서가 등장해 현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단순히 단어와 문법을 나열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삶과 밀접한 ‘한의학’을 문화적 맥락에서 소개한 어휘 학습서 『Pogeki niveau débutant: Vocabulaire coréen pas à pas(포격 초급: 단계별 한국어 어휘)』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출간은 K-팝과 K-드라마로 시작된 프랑스 내 한국 문화 열풍이 이제는 한국어 학습과 전통 의료 서비스라는 생활 밀착형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에서 정식 출간된 이 책은 아델라드 루세나 김(Adélaïde Lucena Kim)과 샤를-엠마뉘엘 베이야르(Charles-Emmanuel Veillard)가 공동 집필한 한국어 입문서다. 프랑스인 학습자들이 한국어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교재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 1,400개를 선정해 단계별로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한국어 단어의 뿌리가 되는 한자 155자를 함께 수록하고, 풍부한 예문과 연습문제를 배치해 독학으로도 한국어의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이번 학습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국의 의료기관인 ‘한의원’과 그 치료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룬 부분이다. 저자인 아델라드 루세나 김은 2024년 5월 서울의 한 유명 한의원을 직접 방문해 침 치료, 부항, 약침, 그리고 척추와 관절을 교정하는 추나 치료까지 직접 체험했다. 책의 137~138페이지에는 당시의 생생한 진료 기록과 사진이 수록되었으며, 한의학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한의학의 원리와 치료 효과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언어 교재에 한의학 치료 경험이 상세히 담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단순히 단어를 암기하는 것을 넘어, 한국인이 아플 때 어떤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지에 대한 ‘생활 문화’ 전반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음을 의미한다. 프랑스 현지 독자들은 한의학을 신비로운 동양의 의술을 넘어, 현대적인 과학과 결합된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건강 관리법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저자들의 세심한 노력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학습자들의 편의를 위해 무료 오디오 파일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대조한 용어집과 한자 색인을 별도로 수록해 학습 효율을 극대화했다. 저자 아델라드 루세나 김은 “단순히 언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총 12권의 시리즈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그 첫 번째 결과물인 이번 책에 한국인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한의학 이야기를 담게 되어 매우 뜻깊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지 한의계 관계자들은 이번 학습서 출간이 유럽 내 한의학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는 언어적 장벽이 높은 분야 중 하나인데, 학습서라는 친숙한 매체를 통해 한의원 이용법과 치료 용어들이 소개됨으로써 외국인 환자들이 한의원의 문턱을 낮게 느끼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K-컬처의 한 축으로서 ‘K-의료’가 프랑스인들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셈이다.
『Pogeki』 시리즈는 현재 다섯 번째 권이 집필 중일 정도로 저자의 열정이 뜨겁다. 프랑스에서 불고 있는 이 같은 한국어 학습 열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깊이 있는 문화 탐구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어 어휘 속에 담긴 한국인의 철학과 한의학의 따뜻한 손길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양국 간의 문화적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한의학이라는 한국의 보물을 발견한 프랑스 독자들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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